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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하고 불경스러운 언어-소품문의 대가,이옥을 중심으로 / 이 은 희

장대명화 2024. 10. 21. 10:36

괴이하고 불경스러운 언어-소품문의 대가,이옥을 중심으로 / 이 은 희

 

작가의 입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소리가 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소재가 부족하다’는 고민거리다. 시간과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 글감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에 한 문인은 주변에 널린 것이 글감이란다. 하지만, 지면에 발표한 글은 남편과 자식이야기, 신변잡기로 일관한다. 그러던 차에 18세기 소품문을 접하며, 수필 소재에 관한 생각이 깊어진다.

 

18, 19세기를 대표하는 소품가인 이옥(李鈺, 1760~1815)의 문장을만나 가슴에 파문이 인다. 이옥과 관련 서적을 주문하여 탐독하며 적잖이 흥분한다. 소재가 부족하다는 문인은 이옥의 삶과 작품세계를 마주하면 부끄러우리라. 글감 탓은 핑계이며, 문학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 생활 주변에서 이옥의 눈에 띈 만물은 글감 대상이다.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한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남긴 문인’이란다.

 

이옥의 생애는 한마디로 고독하고 불우하다. 세상 밖으로 밀쳐진 그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생을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1792년 정조가 출제한 문장 시험에 소품체를 구사하여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하명을 받는다. 이에 불응하여 견책을 받고 충청도 정상현과 경상도 삼가현으로 두 번의 충군(充軍)에 갖은 고초를 겪는다. 그는 유배지에서 돌아와 과장(科場)에 출입하지 않고, 경기도 남양에 칩거하며 글쓰기에 열중하다 여생을 마친다.

 

이옥의 글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재로 세상의 이치를 알린 작품들로 가득하다. 일상에 널린 물상인 새와 물고기, 짐승과 과일, 채소와 나무, 풀 등속을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표현한다. 또한 자신이 체험한 세계를 독특한 해석과 철학적 사유로 빚어낸다.《백운필(白雲筆)》서문에서 ‘책명을 붓 가는 대로 기록한다는 필(筆)이라 하고, 매장마다 담(談)이라는 표제를 붙인 데서 알 수 있듯’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로 심금을 울린다. 그러니 18세기 어떤 지식인과 문사가 그를 따라올 수 있으랴.

 

이옥은 문학적으로 ‘일상성의 대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일상생활의 소재와 주제를 즐겨 다루는 ‘현대문학의 한 장르인 수필문학, 특히 생활수필 혹은 잡감 수필의 선구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 보면, 수필은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순정고문(醇正古文)’의 격식을 파괴한 문체로 시대의 아픔을 겪고 살아남은 문학 장르이다. 이옥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적 문체와 내용을 고집한, 문학의 한 장르로 태동하도록 앞장 선 문장가이다. 일상성을 대표하는《봉성문여(鳳城文餘)》에 실린 작품, 시기(市記)이다.

 

12월27일에 시장이 열렸다. 나는 너무나 심심하고 지루한 나머지 종이창의 구멍을 통해 시장 풍경을 엿보았다. 그때 마치 눈이 올 것처럼 하늘이 컴컴했는데, 눈구름인지 먹구름인지 분변하기가 어려웠다. 대략 정오는 이미 넘긴 시간이었다. 송아지만 하게 보이는 소를 몰고 오는 사람도 있고, 소 두 마리를 몰고 오는 사람도 있고, 품에 닭을 안고 오는 사람도 있다. 팔초어八梢魚(문어)를 들고 오는 사람도 있고, 돼지의 네 다리를 결박한 채 들쳐 매고 오는 사람도 있고, … 서로 만나 허리를 숙여 절하는 사람도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서로 화를 내며 밀치고 다투는 사람도 있고 손을 잡아당기며 서로 희롱하는 남자와 여자도 있고, …

 

시장 풍경을 다 구경하지 않았는데 땔나무를 한 짐 짊어진 사람이 나타나 종이창 바깥으로 바로 보이는 담장 쪽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나 역시 안석에 기대어 누웠다. 한 해가 다 저물어갈 무렵이기 때문인지 시장은 더욱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옥,《봉성문여(鳳城文餘)》, 시기(市記) 중에서

 

겨울 저잣거리의 인정과 풍물을 진솔하게 그려낸 장날 풍경이다.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으로 머물며 지은 글이다. ‘있고’ 라는 반복 문장이 단조롭지만, 사람마다 각각의 특색과 변화가 있는 생동감 넘치는 글이다. 선비들이 주저하던 저잣거리 풍경을 화가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림으로 문장가 이옥이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그 시대의 생활상과 사람 냄새나는 풍경을 어찌 느낄 수 있으랴. 그의 글로 18세기 선인의 문화와 풍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후인은 글 속에서 선인의 삶을 공유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고증한다.《글쓰기 동서대전》의 저자인 한정주는 이옥의 작품집《백운필》에 실린〈담충(談蟲)〉을자신이 본 수천수만 편의 소품문 가운데 가장 탁월하고 독보적인 걸작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미물(존재)의 위대함과 비범함, 거대함의 역설’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일찍이 우연히 수숫대를 꺾어서 그 한마디〔節〕를 쪼개본 적이 있다. 가운데가 텅 비어 구멍이 나 있고 위아래로 마디에 미치지는 못하였는데 그 크기를 비교하자면 연근 구멍과 같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벌레가 있었다. 그 벌레의 길이는 기장 두 알가량 되는데,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생명력이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쉬고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즐겁구나, 벌레여! 이 사이에서 태어나고 이 사이에서 성장하고, 이 사이에서 기거하고, 이 사이에서 입고 먹고 자는구나. 더욱이 이 사이에서 늙어가겠지. … 귀로는 듣지 않고 눈으로는 보지 않으며 그 수숫대의 하얀 속살을 이미 실컷 먹으며 배부르게 살다가, 이따금 우울하거나 답답하고 심심하거나 지루할 때면 그 배때기를 세 번 굴려서 위의 마디에 이르러 멈추니, 이 또한 하나의 소요유(逍遙遊)라고 하겠다. 어찌 거대하고 광활해서 여유로운 땅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즐겁구나, 벌레여!”-이옥,《백운필(白雲筆)》,〈담충(談蟲)〉중에서

 

어느 날 거대한 갑충인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 카프카의《변신》을 떠올리게 하는 실험성 짙은 글이다. 이옥이 스스로 벌레가 되었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글 속에서 사물과 자아의 주관적 일체감이랄까. 수숫대 속의 벌레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벌레는 이옥 자신을 의인화한 것이다. 자신이 펼치고 싶은 세계를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는 세상과 불화를 수숫대 속 벌레에 비유한 것이다. 서얼 출신에 문체반정으로 속세로 밀려난 그가 미물인 벌레가 되어야만 비로소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의 생애와 맞물려 글에서 소외감과 고독감이 느껴진다.

 

정조로부터 소품체 작가로 지목된 강이천(1768년~1801년)은 이옥의 작품을 읽고 ‘붓 끝에 혀가 달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문장가인 이옥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백운필(白雲筆)》서문에서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또 무엇을 가져다 말하고 붓으로 써야 할 것인가?’ 자문하였다. 이러한 작가 정신이 시대를 앞서가는 대가(大家)로 이끈 것이다. 또, 남다른 점은 25세의 이옥은 제야를 특별하게 기념한다. 그는 문학의 신에게 제를 올리며〈문학의 신에게 올리는 제문〉과〈섣달 그믐의 바람〉을 지었다. 문학의 신은 아마도 자기 내면의 다른 이름이리라. 글을 짓고자 갉아먹은 자기 정신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제를 올렸다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21세기 수필가는 ‘괴이하고 불경스러운 언어’를 탐독한다. 시대의 아픔을 나눈 벗과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책을 엮은 후인이 있어 다행이다. ‘이옥의 작품은 양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으나 체계적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고 전한다. 그나마 절친한 벗인 김려(金鑢, 1766~1822)가 그의저서《담정총서(藫庭叢書)》에 일부를 실었다. 이 밖에《백운필(白雲筆)》과《연경, 담배의 모든 것》,《이옥전집》등은 최근에 와서야 발굴된 것이다. 그의 수필(소품문)이 제자리에 안착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고서를 관심 있게 볼 일이다.

 

수필 인구 삼천 명 시대를 맞고 있다. ‘21세기는 수필시대가 될 것이다.’ 라는 이어령 선생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수필을 일러 문학성이 없다고 말한다. 18세기에도 소품문을 폄훼하다 못하여 징벌까지 내리는 문체반정이 벌어진다. 당대에도 이어지는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수필가들이 변화해야만 한다. 현대수필 발행인 윤재천 교수는 ‘문학성은 변화에서 나온다. 수필은 변화해야 하고 디자인하라’고 주문한다. ‘문학성은 다양한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남을 닮으려 하지 말고, 자기만의 글을 써야 한다.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실패해보고, 성공도 해봐야 한다.’ 18세기 소품문의 대가 이옥처럼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수필의 길을 열어가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가을의 영토 안에 머문다. 산야에 단풍을 보니 이옥의 문장이 떠오른다. 이옥의 중흥유기(重興遊記)처럼,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누구와 함께 하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온 천지에 오색 단풍 들고 낙엽이 구르니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랴. 인간의 마음은 아름다움에 흔들리라고 지구에 자리하는가 보다. 선인처럼 글감 잡으러 가을 속으로 떠나보자.

 

                                              기다림은 꽃이 되고 /  이 은 희

 

꽃그늘 아래에서 서성거린다. 푸른 하늘에는 크림색 꽃송이가 가득하다. 마치 꽃등을 켜놓은 듯 환하다. 순간 바람결에 꽃잎이 흔들리며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이렇듯 향기를 뿜는 꽃등이 어디에 또 있으랴. 꽃등이 저절로 켜진 것은 아니다. 꽃들이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하늘을 수놓은 덕분이다. 아니 꽃의 여신은 겨우내 빈 가지에 털북숭이 꽃봉오리를 피우고자 수백 일 그리워했으리라. 목련화 하늘을 목 놓아 기다린 끝에 닿은 것이다.

  꽃그늘 아래 서니 고흐의 ‘아몬드 꽃’이 떠오른다. 고흐도 나처럼 꽃그늘에 들었으리라. 잎도 없는 나뭇가지에 흐드러진 흰 꽃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눈물이 날 정도로 푸른 하늘을 수놓은 무량한 꽃들에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이다. 우윳빛 꽃송이가 시야를 흐리고, 은은한 꽃향기가 숨겨둔 무의식 속 심연을 건드린 듯하다. 꽃의 초점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잡히질 않는다. 목련화로 수놓은 하늘과 유화로 그린 아몬드꽃 그림은 몽환적 분위기로 이끈다.

  명작 「아몬드 꽃」은 반 고흐(1853∼1890)가 죽던 해에 동생 테오의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며 그린 작품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삼촌이 된 고흐는 조카가 생긴 기쁨에 꽃 그림을 그려 선물하였단다. 그림에 조카를 기다리는 진정한 마음이 담겨 그런가. 아니면 고흐의 애정이 전이되었던가. 그림 속 맑은 하늘색을 좋아한 조카는 청년이 될 때까지 이 그림을 침실에 걸어두고 보았단다.

  남프랑스의 아몬드꽃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이끌리듯 뇌리에 자리 잡은 꽃이다. 아몬드꽃의 느낌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손에 잡히지 않는 애잔함이 서린 ‘그리움’이라고 말하련다. 꽃의 슬픈 전설을 알고 있어선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데모폰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필리스와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필리스는 집에 다녀온다는 데모폰을 기다리다 지쳐 숨을 끊는다. 지독한 그리움의 결정체인가. 그녀를 묻은 자리에서 아몬드나무가 아름드리 자라난다.

  사랑의 신은 참으로 얄궂다. 데모폰이 돌아와 그녀를 찾으나 그 자리에 아몬드나무만 우뚝 서 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인 양 나무에 입을 맞추니 봇물이 터지듯 가지마다 꽃잎이 하얗게 돋아났단다. 반 고흐가 그린 아몬드나무 꽃처럼 피어나 더욱 그녀가 보고 싶어 애달팠으리라. 필리스가 사랑하는 데모폰을 목 놓아 기다리고, 고흐가 태어날 조카를 기다리듯 막연한 그리움이 낳은 기다림의 꽃이다.

  꽃은 참으로 많은 전설과 신화를 낳는다. 정녕코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데는 많은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 시린 동토에서 새싹이 돌올한 모습이나, 고목 나뭇가지에서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는 형상을 본 사람은 알리라. 자연의 몸짓은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한다는 것을. 돌아보니 헐벗은 나목에 등불처럼 꽃을 피워 주위를 따뜻하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위인이 여럿이다. 정신적 아픔과 처절한 삶의 역경 속에서 그림을 포기하지 않은 고흐도 그중 한 사람이다. 태어날 사랑스러운 조카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행복했으리라. 정녕 기다림은 그리움을 넘어 꽃이 되고, 그 기다림은 명작을 낳는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삶일지라도 잠시 잠깐 자연이 낳은 명작에 마음을 주길 바란다. 털북숭이 겨울눈으로 수백 날 인내와 기다림으로 꽃을 피운 나무. 꽃의 우아한 몸짓을 바라보며 고통을 이겨내길 비손한다.

 

  온 누리가 결결이 봄꽃으로 맑고 향기롭다. 눈앞의 꽃 세계는 겨울이란 힘겨운 계절을 참고 버티고 이겨낸 선물, 삶에 의지의 결실이다. 막연한 그리움이든, 기다림이든 가슴에 품어보길 원한다. 그 대상이 꽃이든 인간이든 다 좋으리라.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것’ 하나쯤은 가슴에 품어야 헛헛하지 않으랴. 부디 자신만의 아늑한 꽃그늘을 만들어 보길.

 

                                                          맥脈 / 이 은 희

 

 사람들은 청보리를 보러 섬으로 간다. 일상의 틈을 낼 수 없는 나는, 우중에 미술관으로 찾아든다. 관람객이 없어 전시 공간은 광활하다. 회벽에는 초록 바다를 연상하는 듯 푸른 파도가 너울거린다. 내 가슴도 덩달아 잉큼잉큼 뛰고 있다. 청보리는 바람과 일체가 되어 흔들리고 있다. 보리 줄기는 날이 선 수염의 존재감도 잊은 채 유연하게 바닥으로 드러눕는다. 바람이 잦아드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청보리는 꼿꼿이 제자리에 서 있다.

  그림 속 청보리의 표현이 세밀하다. 혈맥이 흐르는 듯 잎맥도 세세하다. 바람결에 청보리의 맥박이 느껴지는 듯하다. 여물지 않은 푸른 이삭이 줄기 끝에 알알이 맺혀 나그네의 가슴을 흔들고 있다. 그림 속 청보리는 바람결을 따라 군무 중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바람이 청보리를 키운 것일까. 그런데 서로의 몸이 부딪혀도 생채기가 보이지 않으니 이 모습을 어찌 설명하랴. 아마도 바람과 보리, 보리와 보리에 간극의 거리를 잘 조율하고 있는가 보다.

  온몸에 맥이 풀리면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일이 싫증이 난 것이 아니라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침대에 시체처럼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다. 몸이 사정없이 쓰러지는 순간에 무엇이 눈에 들어오랴. 이 순간만은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가 없다. 하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인물이 있다. 바로, 자식이다. 자녀를 키우던 시절에는 자식의 일이라면, 누웠다가도 다시 꼿꼿이 일어서지 않았던가. 육신의 맥이 풀려도 정신력으로 버티고 서 있던 푸른 나날들. 보리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이방인은 들녘에 출렁이는 청보리밭에서 환호성을 지르지만, 바람결에 흔들리는 보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리라. 상대를 보호하고 배려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숙맥으로 사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일이 많은 사람은 본업 외에도 일이 보태지고, 일을 잘 처리하여 일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오죽하면, 자신을 우스갯소리로 ‘무수리도 상 무수리’라고 말하랴. 남의 부탁을 냉정히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도 있고, 스스로 일을 만들고 업어 오는 격이니 누구를 탓하랴. 돌아보면, 그래서 서로에게 도드라지지 않고 인맥을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황금 보리밭 그림 앞이다. 시선을 사로잡은 박영대 화백의 「황맥黃麥(1988년)」은 한지에 먹으로 그린 대작이다. 늦가을 추수를 앞둔 들녘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참으로 넉넉하고 풍요롭다. 화가는 한 작품에 몰두한 시간이 자그마치 2년이 넘는단다. 그의 삶은 보리를 출산하기 위한 일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리를 향한 열정은 그 누구도 뛰어넘지 못하리라. 그는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농부의 삶을 잘 알고 있다. 생의 체험으로 눅잦힌 그림이라 보리의 결을 생생히 표현하였으리라. 한 시기는 보리를 떠나 나무를 그려보지만, 보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후반기로 갈수록 푸른 보리보다는 누런 보리가 좋단다. 그림도 보리의 실제 묘사에서 반추상적 기법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맥의 줄기를 잡고 일생을 불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