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동섬/겨울 소리 ㅡ 김 정 화
햇동섬 / 김 정 화
늦은 퇴근길이다. 하늘은 단단한 어둠으로 조여있고, 거리의 불빛이 밤바람에 일렁인다. 미등을 켜니 시야에 흐릿한 밤안개가 비춰온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작은 하루살이들이 빛살을 뚫고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잠시 속도를 줄여 그들을 비켜주는 여유도 가질만한 시간이다.
밤 숲길로 들어섰다. 굽이진 길을 타고 재를 넘어서니 나무들의 속살거림이 들려온다. 진달래 꽃도 지고 동백꽃도 떨어진 봄의 끝자락에 무성한 초록 잎만 남았다. 이팝나무는 잔가지를 흔들며 마지막 봄을 털어낸다. 산 어귀로 들어서니 아카시아와 토끼풀이 하늘과 땅을 마주하며 하얗게 깨어난다. 시심詩心이 몸을 툭 건드릴만한 풍경이다.
자정 무렵에 지켜보는 고요는 늘 남다르다. 구름이 걷히면서 머금었던 뚜렷한 빛들이 스며 나오니 어둑했던 산길이 꿈틀꿈틀 똬리를 풀기 시작한다. 엉긴 단어들이 머릿속에 고여 있다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밤멀미를 피할 겸 차에서 내려 나무를 바라본다. 담쟁이 덩굴이 노송의 밑둥부터 휘추리까지 온몸을 비틀면서 친친 둘러 감으며 천천히 기어오르고 있다. 줄기마다 흡착근을 깊게 내린 생명력이 놀라워 덩굴 잔가지를 하나 꺾어 살짝 깨물어본다.
내 마음의 글샘에도 옹골찬 생각이 차오르기를 바라지만 옭아맨 글줄기는 세월 먹은 새끼줄마냥 툭툭 끊어지고 만다. 하고픈 말이 글로 옮겨지지 않아 자꾸 마음만 계절을 앞질러 간다. 한여름의 세찬 계곡물 소리를 떠 올리고, 가을 산의 붉은 아우성에도 귀 기울여 보며, 설국의 계절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떠올려진 글자들은 배배 마르고, 갈지 못한 날선 문장은 폐부를 찌르며, 무딘 길은 거치적거리기만 하다. 생각의 구덕에는 빈곤의 무게만 쌓여진다.
밤바다로 고개를 돌린다. 바닷물의 찰찰찰 차오르는 소리가 다가온다. 바위는 상처 난 파도를 잠재우려고 보득솔 그림자를 한껏 끌어당긴다. 등댓불이 휘돌며 까물거린다. 실눈을 뜨고 생각줄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본다. 검은 바다가 섭섭하도록 돌아앉은 작은 섬이 보인다. 마치 굴려내지 못한 언어들이 마음에 갇힌 채 꿈쩍하지 않는 모양 같다. 물 속에 잠겼던 바위가 파도 위로 드러나는 모양을 보니 글의 씨앗이 터질 것 같기도 하다. 봉긋한 글의 씨앗, 그 모양새의 섬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
대가야 유적지인 고령의 고분군에 간 적이 있다. 비탈진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능선에는 봉분들이 낙타 등처럼 줄지어 솟아 있었다. 봉분 위에는 길섶에서부터 피기 시작한 하얀 개망초가 수의를 입혀놓았다.
사막의 낙타
섬을 지고 다니는 낙타
뙤약볕에 타고 있는 봉분을 보며 능 비탈에 앉았다. 오월 햇살은 겉눈을 가리고 심안心眼을 드러내주며 무딘 살갗을 태워 심감心感을 일깨우게 해 준다. 봉분의 잔디를 손길로 쓰다듬는다. 천오백 년 전 고대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우륵의 가얏고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는 울림으로 이어져 바람을 타고 계곡을 넘어 사람을 흔들었을 것이다. 그 울림은 다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넘나들며 흔들리고 구르고 굽이치면서 깊고 크게 때로는 애절하고 절박한 떨림의 몸짓으로 실려갔을 것이다. 이제 망국의 음이 되어버린 비창한 가야금 선율은 봉분 속으로 스며들어 멸망한 왕국의 아픔만이 까슬하게 전해진다.
봉분은 땅 위에 드러난 섬이다. 왕의 무덤은 가야의 역사를 전해주니 언어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에는 지금까지 읽어내지 못한 언어들이 가득 차 있다. 왜 가야 백성들은 신라인들과 다르게 왕을 평지에 묻지 않고 하늘 아래 언덕에 묻었을까. 죽어서도 높은 곳에 자리 잡아 백성을 다스리기를 바라는 순박한 마음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권위에 제대로 숨 쉬지 못했을까. 봉분은 가까이 기대어 선왕의 체온을 느껴보라 하고, 귀 기울여 순장된 신하의 한을 들어라 눈짓한다. 개망초가 바람결에 흔들리니 대가야의 전설이 다시 살아 숨 쉰다.
섬은 흔들리지 않는다. 바다의 섬은 갯바람과 거친 파도에도 묵묵히 버텨나간다. 산의 섬은 골바람과 차디찬 폭설에도 봉분 끝으로 위엄을 지킨다. 바다의 섬은 등댓불이 감싸안고 산의 섬은 달빛이 지켜준다.
지금 내 마음에도 작은 섬 하나를 품고 있다. 그 섬은 글의 씨앗을 보듬고 새순을 틔우기 위해 밤새워 이슬을 맞기도 한다. 마음의 섬은 스스로 지켜가야 한다. 과욕의 버캐를 걷어내고 해풍을 견딘다면 언젠가 언어의 물살에 흠뻑 젖어드는 날이 올게다.
송간松間을 비집고 들어오는 새벽공기를 한 모금 들이키니 비워낸 몸이 가벼워진다. 마음의 행간行間에 햇동이 고이기 시작한다.
등살에 글이 꿈틀댄다.
겨울 소리 / 김 정 화
하늘에 빗금이 그려진다.
수리새 한 마리가 태양을 향해 솟아오른다. 바람에 커다란 날개를 내맡긴 채 가끔씩 물결치는 몸짓은, 인간이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자신보다 행복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문맹을 깨쳐 만물을 다스린다하나 두 발로 무겁게 디디는 한, 마음껏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새들은 가벼운 깃털의 흔들림만으로 하늘을 온통 차지했으니 물질로 행복을 저울질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들의 비상이 부럽기만 하다.
더 가까이에서 새들의 군락이 보고 싶어졌다. 서쪽으로 제법 기울기는 했으나 남은 햇살은 충분했다. 고속도로를 여기저기 달리면서 지나쳤던 산들을 곰곰이 생각하니 새들의 모습이었다고 여겨진다. 단풍으로 불이 붙은 늦가을 가지산은 청둥오리들의 군무였고, 동학사에서 본 겨울 계룡산은 타버린 재로 덮인 양 금방이라도 휘파람새가 나타날 듯하였다. 지난 해, 차창 밖으로 지나쳤던 화왕산은 잔설로 물기 머금은 한 마리 도요새 마냥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산처럼 들도 새를 맞이하는 뜨락임은 마찬가지다.
인적이 드문 우포늪은 자연의 소리로 광활하다. 바싹 마른 갈대잎은 겨울바람으로 몸을 비비고 작은 물떼새들은 종종거리며 자맥질하고 있다. 고개를 낮춰 귀 기울이니 늪에 서식하는 수생식물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저 멀리 쪽지벌에서 '홋호홋호'하는 고니의 외침이 울려오면 기러기떼는 '과우우우'답하며 깃털을 털기 시작한다. 박자 없이 소리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승전보를 안고 오는 군사들의 함성소리를 닮았다. 닫힌 마음에서 모처럼 시원스레 회오리바람이 인다.
울음소리. 나도 저 새들처럼 한때 무척 소리를 질렀다. 격정에 사로잡혔을 때, 실패에 대해서 발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고함치고, 억울함에 대해서는 분노로 대들었다. 뜻밖의 이별에 대해서는 세상을 향해 통곡을 하였다. 그 시간들도 세월에 묻히는 운명을 지녔는지, 이제는 숨비소리가 가슴에서 낮게 들려올 뿐이다.
탐조. 서두르지 않고 지그시 겨울 철새들을 바라본다. 새를 살피는 일이란 원시시대를 만나는 길이다. 나는 두 손에 갈돌을 든 유목인이 되어 중생대 시기에는 호수였을 늪둑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청둥오리 떼들이 귀향을 위해 몸을 키우느라 뻘 속에서 먹잇감을 찾고, 풀씨를 찾는 쇠기러기들은 발자국을 부지런히 남긴다. 가끔씩 무리에서 벗어난 서너 마리가 북녘 고향을 응시하기도 한다. 새를 살피다 보면 내 발이 오래 그 자리에 박혀있으면 싶다.
출현. 은빛 털을 가진 큰고니 한 마리가 갈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늙은 소나무 사이로 비친 석양을 등에 업고 외발로 곧추 선 자세에서 생명의 기운을 전해 받는다. 저 새도 혹한기를 피할 시베리아를 꿈꾸겠지. 상처로 얼룩져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한 삶이다 싶다. 그러지 못한 처지라면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휑한 바람이 일게다.
두어 달 전의 일이다. 새내기 운전자가 되어 이십 년 만에 고향 마을을 찾았다. 예전의 마을이었던 들판에는 넓은 도로가 뻗어 있고, 유년시절의 사람들과 동네 집들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둑방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조그만 집터가 나왔다. 나온 게 아니라 외딴집 흔적을 가까스로 찾아낸 것이다. 흙덩이 사이로 땅을 밟아보았다. 마당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무화과 잎사귀가 흔들리는 듯한 환영이 비쳤다. 가끔씩 얼룩무늬 비비새가 쉬어가던 작은 개울과 닭 무리가 놀던 갈대숲 자국도 조금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소멸은 초가집 추녀에 달린 제비집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 어미 새는 새끼 제비를 위해 좁은 제비집에 들어가지 않고 전깃줄에 앉아 비를 흠뻑 맞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비가 오면 늘 부엌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퀭한 제비 모습에 철없는 자식들만 남겨두고 이십 년 전에 떠난 부모님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후루룩 비로 젖는다. 부모가 되는 일은 온 몸을 적시는 희생이라던 어머니의 말이 자식을 키우면서 비로소 제비소리와 함께 떠오른다.
갈대 사이로 보이는 세상이 편안하다 하면서 두어 시간을 앉아 있었다. 겨울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여린 석양이 따스하다 느끼면서, 구름 사이로 훠이훠이 나는 저 새들을 닮고 싶다 하면서, '엘 콘도 파사'를 조용히 흥얼거려 본다.
인간은 날지 못하는 새다. 마추피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대 잉카인들도 자신이 새였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살던 곳을 잃고 쫓겨난 콘도르처럼 나 또한 겨울철새의 무리에서 뒤처진 한 마리 새가 아닐까 싶다. 씁쓰레한 마음을 피하듯 고개를 내리니, 물 속에는 깃털을 드리운 내 그림자가 이미 반쯤 흔들리고 있다.
늪 가장자리에서 겨울 풋바람이 매섭게 밀려온다. 얼마 후면 저 새들도 귀향할 게고 새 울음으로 충만한 저곳은 한동안 정적의 늪으로 남을 게다. 하지만 봄이 되면 남쪽에서 날아온 도요새들이 두런거리며 한철 집을 지을 것이다. 빛살을 맞은 연록색 매자기 군락 안으로 논병아리들도 오종종 몸을 드러내고, 왜가리가 골풀 사이로 의연한 자태를 한껏 뽐내면 다시 늪은 활기를 돋우리라.
늪은 매년 침묵으로 새들을 기다린다. 불현듯, 내 고향도 언제나 그곳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발걸음이 급해진다. 멀리 고향마을에서 연기 같은 훈김이 뭉클 불어오는 듯하다. 겨울 저녁의 우포늪이 다시 활기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제 비·상· 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