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ㅡ 박종철
왜가리 / 박종철
동트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갯바위에 함초롬히 서 있는 왜가리 한 마리.
그의 하루는 여명을 마중하면서 시작된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곁눈을 팔지 않는 성실한 사냥꾼이 된다.
개울, 호수, 바닷가, 습지 등을 즐겨 찾는다. 종일 한증막 같은 논에 발을 담그고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안개처럼 개울을 덮을 때, 무거운 몸을 일으켜 힘겹게 하늘로 오른다. 그의 고달픈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다.
왜가리는 조신한 노신사다.
항상 흰 와이셔츠에 회색 정장을 즐겨 입는다. 긴 목, 긴 다리, 긴 날개, 긴 부리, 우아한 댕기 등 팔등신의 조건을 두루 갖춘 하늘의 신사다.
그는 고독한 사색가이다.
한적한 개울 가운데 서서 하염없이 한 곳을 응시하며 수행자처럼 사색에 빠져있다. 아름다운 자연에 동화되어 철학적 사유에 잠겨 있는 사상가이다.
그는 노래를 상실한 새다.
명상에 침잠하여 말과 노래를 잃어버렸다. 감정을 안으로만 삭이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입이 무거운 새다. 이따금 끼익, 끼익 하고 괴성을 지르는 것이 고작이라 타고난 음치다.
고독한 왜가리를 좋아한다.
무욕의 수신자처럼 여유로운 날개짓, 선비의 기품을 닮은 새다.
그의 침묵, 그의 탐색, 기다림을 본받고 싶다. 그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넓은 자유의 세계를 거니는 외로운 철학자이다.
그가 지니고 있는 얼음같은 냉철함과 깃털같이 부드러운 화평, 세속을 초월한 선사같은 의연함.
문학도 고독으로부터 출발하기에 그를 흠모한다. 그의 성품을 닮아 높은 경지에 이르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