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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무기(외2편) / 정 목 일

장대명화 2022. 8. 13. 11:39

                                                                   보석과 무기 / 정 목 일

터키 여행 중에 톱카프 궁전의 보물관을 관람하였다.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제국 25명이 술탄(황제)이 생활하던 곳이다. 흑해를 넘어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대륙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오스만 왕국의 심장이다. 이 곳의 보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물방울 다이아몬드도 소장하고 있다.
보물관을 관람하는 여인들의 눈에선 광채가 돌고 경탄하며 시간을 끌지만, 남자들은 대개 덤덤하게 자리에 머물지 않고 지나치고 만다. 아내나 애인에게 보석을 사 줄 형편이 되지 않은 남자들이 더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다이아몬드를 비롯하여 에메랄드, 사파이어, 푸비, 산호, 진주, 오팔, 터키석, 토파즈…
보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았다. 특수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 제 각각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는 보석들…. 현혹되거나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미美 에 대한 불감증이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희귀한 보석들이 많고, 보석들이 제 각기 아름다움의 경연을 펼치고 있기에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보석들이 천하제일인 양 제 모양을 뽐내고 있으나, 모두 아름답다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법이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평생에 소유해 보지도 않았기에 보석에 대한 무식의 소치일 수 있다.
톱카프 궁전의 보물관에 진열된 보석들에서 터키의 영광과 힘을 본다. 저 보석들은 무기의 힘으로 번쩍거리고 전쟁의 노획품과 상납품으로 놓여있다. 강대국의 힘에 의한 예물일 수도 있다.
보석들엔 아름다움만이 아닌, 피와 살육의 냄새도 깃들어 있다. 유리 진열장 속에 들어있는 호화찬란한 보석들은 왕족이나 황실의 귀족들에게 권위와 명예를 돋보이게 하는 최상의 장식물이었다. 여성 관람자들은 자신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서 무도장에 나타난 모습을 상상하면서 황홀감에 잠기는 모습을 그려보고 있지 않을까.
보석이 귀중하고 가치로운 것은 아름다움의 영구성이다. 인간은 늙어가도 보석의 미는 영원하다. 보석들은 세공사細工士의 솜씨에 따라 모양과 아름다움이 다르겠으나 공통적으로 태양이나 꽃의 모습을 띠고 있다. 태양이나 꽃은 미의 원천이며 완성이랄 수 있다. 무 생명체인 보석은 영원성을​ 가졌으나, 생명체인 인간은 유한성을 지녔을 뿐이다.
보물관의 보석들에선 피와 화약 냄새가 난다. 무력과 음모와 술수의 눈빛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부강과 권세의 한 순간에 잠시 핀 꽃이 아닌가. 진열장 속의 보석들은 이미 아름다운 시​·공간의 존재와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풀꽃 반지를 애인에게 끼워주고 포옹할 때처럼 지금 이 순간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톱카프 궁전엔 무기관도 있어 대조를 보였다.
무기 진열장을 관람했다. 칼, 활, 창, 총, 방패 등이다. 진열관에서 자못 놀란 것은 사람의 생명을 끊기 위해 만든 무기들이 아름답다는 데 있다. 무기란 보는 것만으로도 살기殺氣와 공포를 안겨주어 떨게 만들어야 제격이다. 무기들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보여서 이상야릇하기만 했다. 칼의 매끈하게 뻗은 선과 첨예하게 날카로운 칼날에 공포는커녕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데에 놀람이 뒤따랐다. 칼이나 창은 생명을 앗아가는 냉혹감과 전율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 무기들의 미끈한 선線과 날렵한 형태에서 순간적으로 저런 아름다운 칼날이나 창끝에 생명을 잃게 될지라도, 병사는 후회가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무기에 대한 공포심이나 증오감 대신에 어째서 칼, 창, 방패 등에 미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치정하여​ 마치 무기가 최상의 장식물처럼 느껴지게 한 것일까. 칼과 창, 방패 등에 최대한의 미적인 요소를 살리고 있다. 보석으로 장식한 무기들도 있었다. 무기에 보석을 박아놓은 것은 황제용이거나 황실의 귀족과 장군들이 쓰던 것임을 말해 준다. 전쟁터에 나가는 일은 곧 생사가 달린 일생일대의 모험을 건 일이기에 전사戰士에게 무기는 곧 생명이요, 보석 이상의 의미가 있따. 생명을 지키고 보존케 하는 최상의 무기이자 장식품이었을 것이다.
전시관에 진열된 무기들에선 생명을 걸고 싸워야 했던 인류의 삶과 역사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거두어야 하고,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생존경쟁의 먹이사슬이 보인다. 살벌한 무기에 미의식을 부여한 것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닐까.
톱카프 궁전의 보물관과 무기관을 관람하고 역사와 문화를 생각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점엔 평화아 아름다움이 있다. 이를 위해 영역과 부富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 전쟁 없는 평화와 아름다움을 어떻게 찾고 유지할 것인가. 보석과 무기는 이런 질문을 관람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

 

                                                                     아름다운 간격 / 정목일

 

깊은 산중의 고찰에 가보면, 예전에 없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옛 것과 새 것이 뒤섞이고 건물들의 간격이 좁아졌다. 건물의 배치는 여러 측면을 살폈을 것이다. 건축이나 그림을 그릴 때에 적용되는 황금 비례를 염두에 둠은 물론이요, 건물과 건물의 간격, 산세와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사찰이 창건될 때와는 달리 규모가 커지면서 제한된 공간 속에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간격이 맞지 않음을 느낀다. 산과 사찰, 인간과 자연, 대웅전과 요사채 등에 사색의 간격이 사라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내가 미국 서부 휴양도시인 산타바바라에서 본 해안 풍경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 바닷가 식당 지붕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펠리칸, 갈매기, 비둘기들이 수십 마리가 일직선으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유심히 본 것은 새들의 간격이었다. 덩치가 큰 펠리칸들이 앉은 간격과 갈매기, 비둘기가 앉은 간격이 몸의 크기와 정확하게 비례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들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여 앉는다는 사실이다.

미국 서부 아리조나 사막을 여행할 때도 비슷한 풍경을 접했다. 바람이 불면 굴러가다가 자리를 잡아 살아가는 '세시부래쉬'란 사막의 풀이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줄기가 부러져 날아가 죽은 듯이 있지만 비가 오면 살아나 13m까지 뿌리를 내린다. 광막한 사막을 차지한 풀들은 바람에 날려가다가 멈춰진 곳에 자리를 잡아 자생하는 것이지만, 마치 사람들이 심어놓은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생명의 신비에 경탄했다.

모든 생명체가 영역과 간격을 유지하므로써 공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활동 범위가 넓은 야수들은 그만큼 생존 영역이 넓어야 하며, 이 영역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생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종(種)의 번식을 위해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것은 동물의 본능에 속한다.

고속도로에서 주행중에 뒷차와의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고 바짝 뒤쫓아오는 경우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안전 거리라는 게 있어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여야 마음이 놓인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는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고 간격이 있어야 한다.

도시란 일터와 쉼터가 조화를 이루고 숲과 공원 등 녹색 공간이 많아 시민들이 마음놓고 휴식하고 운동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가도로가 필요하다면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도 있어야 한다. 긴장된 삶을 완화시켜줄 휴식 공간이 있어야 하고, 가로수 아래에 앉아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벤치가 필요하다. 가로수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기에 쾌적감을 갖게 하지 않는가.

인간 관계도 간격이 있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싫증이 나게 마련이며 멀리 있으면 망각하기 쉽다. 삶에 있어서 상대방과의 간격 유지는 슬기가 아닐 수 없다. 간격은 떨어짐의 공허만이 아닌 서로간의 깊이와 이해와 자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병간호를 하는 경우에 부부간이나 가족일지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나중에는 지치고 말 뿐 아니라 짜증을 내게 될지 모른다.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에게도 자신만이 가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간호를 한다는 구실로 그런 시간마저 빼앗아서는 안 될 듯싶다. 병간호에도 일정한 간격을 두어야 효과가 있지 않을까.

어떤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데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간격이 없으면 허물도 보이고 취약점도 드러난다. 간격을 없애고 밀착시킬 때 아름다움은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이해의 간격, 배려의 간격, 사색의 간격, 사랑의 간격이 있어야 한다.

날이 저물고 저녁놀이 붉게 타고 있다. 사라지는 저녁놀이 아름다운 것은 하루라는 간격이 있어서일 것이다. 계절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일년간의 간격이 있어서이고, 그대가 그리운 것은 내가 볼 수가 없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차 한 잔 / 정 목 일

 

차 한잔 속엔 평범 속의 오묘함이 있다.

그리운 이여, 매화가 피면, 국화가 피면 차 한잔을 나누고 싶다. 촛불을 켜놓고 마주 앉아 차 한잔을 나누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은가.

찻물은 심심산곡의 샘물을 받아와 쓴다. 첩첩산중의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맑은 물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산의 마음에 고여 있었다. 산의 만년 명상과 만 가지 풀, 나무들의 뿌리를 거쳐 맑고 깊어진 데다가 온갖 약초내음이 섞여 투명해졌다. 한잔의 물에 산의 마음이 가라앉아 담담해졌지만 심오하기 그지없어 사량(思量)하기조차 힘든다.

좋은 차를 구하기 위해 봄에 하동 쌍계사에 가서 우전차(雨前茶)를 사왔다. 우전차는 곡우(穀雨) 전후 따온 녹차잎으로 만든다. 우전차엔 겨울의 긴 침묵을 견뎌낸 산의 입김이 서려 있다. 어둠과 죽음을 건너온 생명의 신비가 있다. 이 세상에 새움보다 더 보드랍고 눈부신 색깔은 없다. 탄생의 빛깔이요 신(神)이 낸 색채이기 때문이다.

차그릇으론 막사발을 쓰고 싶다. 잘 만들겠다는 의식없이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마음도 없이 무의식 무형식으로, 무상 무념으로 빚어놓은 막사발이 좋을 듯하다. 차그릇은 산의 침묵, 하늘과 땅의 말들이 숨을 쉬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므로 텅 비어 있는 것이 좋다. 마음속까지 비워져야만 깊어질 대로 깊어져 산의 마음이 자리잡을 수 있다. 잔을 잡았을 때, 온화하고 그윽하여 저절로 마음에 가닿아야 한다. 찻잔도 한순간에 마음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만지는 동안 심오한 생각이 찻잔에 닿아, 어느새 정감과 사색의 이끼가 끼어야 오묘해진다.

차를 잘 다려 내려면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 아,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어디 가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복숭아꽃이 핀 것을 보고, 설산에 핀 풀꽃들을 바라보며 깨달은 이들이여. 무심코 추녀 끝에서 낙숫물이 떨어지자 섬돌 앞의 땅이 젖는 것을 보고서, 찻잎을 따면서, 깨달은 이들이여. 그 마음속에는 무심의 차 한잔이 놓여 있었던 것일까. 멀리서 영원하고 심오한 것을 보려다 눈이 먼 이들이여. 깨달음은 내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마음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차를 우려낸 다음, 침향(沈香)을 꺼내 손으로 부벼 향긋한 냄새를 적셔 권해드리고 싶다. 침향은 향나무가 천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나온 것으로서, 세월이 지날수록 향기가 심원(深遠)해져간다. 차향에 침향의 천년 향기를 보태 맡으며, 차를 맛보고 싶다. 차 한잔에 잠긴 향기를 코 끝에 대보며 천년의 세월을 호흡해보고 싶다.

차 한잔을 드는 것처럼 손쉽고 간단한 일도 없다. 하지만, 한량없이 신묘하여 막막해질 때가 있다.

차 한잔을 드는 것은 산의 만년 명상과 마주 앉는 것, 영원의 하늘과 이마를 맞대어보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떻게 차 한잔을 잘 달여 마실 수 있을까. 만년 적막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염없이 몇만 광년의 별빛을 맞을 수 있을까.

달빛 속에선 모두 닿아 있다. 찰나 속에 영원히 담기고 영원은 찰나 속에 숨을 쉰다. 별자리가 움직이고 계절이 바뀌고 물은 흐른다. 차 한잔을 마시며 영혼을 호흡해본다. 찰나 속에 영혼을 버리는 것이 영원을 얻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운 이여, 매화가 피거든, 난초꽃이 피거든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