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 아래 피는 꽃(외3편) / 김 삼 복
목어 아래 피는 꽃 / 김 삼 복
화암사 가는 길, 물길과 사람길이 나란히 정답다. 봄에 피는 얼레지나 볼까 하여 나선 길, 아직 때가 이른가 보다. 불심 깊은 골짜기에는 꽃 대신 나지막한 돌탑들이 돋아있다. 누군가 하나 둘 쌓은 것 위에 산 아래 감골 아낙이 자신의 소원을 슬며시 얹어 놓았을까. 돌탑들은 소원을 숨긴 채 수줍게 쌓여있다. 깊고 외진 산문 앞 돌무더기 그림자 안에 웅숭깊은 마음이 가득하다.
마음이 아파서도 특별히 빌 것이 있어서 온 건 아니다. 그러나 산사는 스스로를 부감시키는 마력이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마음의 조망이 옮겨지고 자신의 짊어진 짐의 내력을 살핀다. 발걸음부터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터진 살갗으로 키가 자란 참나무와 속세의 먼지를 터는 산죽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길목, 나무들이 봄물을 머금어서 굼실굼실 움마다 열망으로 도드라져 있다. 산길을 다 오르니 심연의 충돌들이 기운을 잃고 숨을 고른다. 적묵당에 앉아 풍경소리를 듣고 있으니 헝클어진 마음결이 제자리를 찾는다.
우화루 나무창으로 들어온 봄바람이 아직은 차갑다. 반듯한 사각 천장에 파란 하늘이 팽팽하다. 이곳을 몇 번이나 왔을까. 마음은 너무나 여리고 예민하여 사각 마당에 지는 그림자에서 비켜간 세월을 읽는다.
명승지 산사에는 크고 화려한 어고도 많은데 화암사 목어는 작고 소박하다. 비늘도 벗겨지고 색도 휘발되어 산산조각난 목어 한 마리. 지난겨울에는 백석의 명태처럼 꽁꽁 얼었다가 꼬리에 기다란 고드름도 달렸겠다. 서럽게 차갑고 파리한 목어는 여전히 처마 밑 쇠고리에 묶여 속을 비운다. 제 속을 파내고 바람과 햇볕과 시간을 끌어 담았다. 그것들이 엉겨 붙은 뜨거운 속을 나무 방망이로 두드려가며 첩첩산중에서 아직도 예불 중이다. 제 가슴을 울려 바다짐승들을 깨우는 소리는 계곡물 따라 강물 따라 어느 바다로 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목어의 꿈을 싣고 가는 물길을 따라 사람들은 거꾸로 거슬러 왔다.
30년 만이다. 거슬러 온 시간들을 나는 놓아버렸던가 아님 놓쳤던가. 다시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무슨 바람이 내 속에서 일어 이런 짓을 도모했는지 거슬러 온 나의 물길을 내려다본다. 이제 와 또 학인이 되겠다는 나의 의지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생각했다. 철 지난 외투의 구멍 난 주머니처럼 의미 있던 것들을 자꾸 흘려버려서 이제와 꿰매보겠다는 우격다짐인지도 모른다. “다 늙어서 웬 공부냐?”며 제대로 늦바람 난 욕망이라고 친정언니는 지청구를 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새롭게 배운다는 것은 흥분되는 것이다. 반들거리는 전공서적을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어쩌면 이런 떨림이, 두근거림이 남은 시간을 꽃피우게 할지도 모른다. 파냈던 살 한 점을 되찾은 듯하다.
자신의 꿈을 파내고 비우면서 마르고 비틀린 목어의 시간을 지나 배움의 열망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나이 든 문우들이 스쳐갔다. 내세울 것 없고 어느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 옹골진 불구 하나에 의지하며 두두둥 소리를 울리며 살아 나온 그들은 한결같이 따스하다. 파낸 속살들로 먹이고 키운 아들딸들은 하나둘씩 자기의 물길을 따라 헤엄쳐 갔다. 사각 천장에 갇혀 대웅전 햇볕이 그어놓은 그늘의 금을 세어갔던 목어의 시간은 어느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을까. 목어의 불경을 듣고 자란 산 아래 나무와 꽃들과 들짐승과 물고기를 생각했다. 눈과 비에 젖고 얼어 해쓱하게 늙었지만 못생긴 목어는 그래서 더 우직하다. 외갓집 같은 산사 마당에 따스한 볕이 노랗다. 내려가는 산길 어딘가에 숨어 있을 꽃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돌 위에 돌을, 마음 위에 마음 하나를 얹지 않고 사붓사붓 산길을 내려왔다. 돌이 자란 곳, 아니 마음이 쌓인 계곡 길을 내려오며 하심下心이니 무소유니하는 말들을 곱씹었다. 오늘도 우화루 밑에 걸린 목어는 깨끗이 속을 비워 바람과 볕에 제 빛깔을 내주지 않던가. 어차피 마음 비우기는 애당초 과분한 하문으로 남기고 산 밑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새로 난 철계단을 뒤로하고 옛길로 내려섰다. 절벽 아래 너덜겅바위 옆을 지나는 순간, 드디어 보랏빛 치맛자락을 사뿐히 들어올린 꽃 한 송이가 보였다. 햇볕이 잘 들어 포실한 흙속에서 뽀얀 속살 내보이고 매초롬하게 고개 숙이고 있었다. 분명 목어가 목 터지게 불러낸 꽃이리라. 그래서 화암사 기슭에는 우직한 목어 옆에 역마살 낀 얼레지가 그리도 많았나 보다. 이제 목어 꼬리에 제 몸을 묶어두려는 발칙한 보랏빛들이 와앙 일어나겠지.
화암사 목어 아래 앙큼한 얼레지가 피었다. 그것이 제대로 바람났다는 풍문이 벌써 저잣거리에 파다할 것이다.*
'나순개' 아리랑 / 김 삼 복
그 겨울, 아이를 버렸다.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버린 것이 맞다. 대책 없는 씨앗으로 맺힌 작은 점 하나를 울며불며 나는 외면했고 독하게 눈 감았다. 그 뒤로 나쁜 여자라고, 죄 많은 여자라고 긴 세월 동안 나는 나를 괴롭혔다. 그런 겨울을 지나고 핼쑥한 얼굴로 친정집을 갔었다. 삼신할매와 모질게 틀어진 딸들은 슬픔의 끈을 질질 끌고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는다. 세상 밖으로 튀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머니 품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드는 구심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봄볕이 따사로웠다. 찬란한 햇살을 주저없이 빈속에 넣고 싶었다. 어머니를 졸라 소쿠리를 들고 마을 뒤 진등밭을 올라갔다.
겨울나기 나무를 하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던 길이다. 어머니는 방죽 근처에서 시린 하늘을 보고 있거나 소나무 향기를 맡느라 해찰을 해쌓는 나의 이름을 풀섶 뒤에서 불러주셨고 그것으로 산의 무서움을 덜어주시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그때 거닐어보고 오랜만에 와보는 마을 뒷산이었다. 리기다소나무가 빼곡했고 그 사이로 터널처럼 오솔길이 기다랗게 흰 다리를 뻗고 있었다. 그길로 마을의 아낙들은 삭정이를 이어 날고 아재들은 거름을 지게에 메고 걸어 올랐었다.
봄나물을 캐려면 이 오솔길을 벗어나야한다. 봉긋한 무덤들이 계란 솟은 산비탈을 지나니 손바닥만한 밭뙈기들이 이지러진 달처럼 부드럽게 굽어있다. 밭두렁에는 마른 억새와 수크렁이 수북했고 벌써 흑염소들이 봄풀을 뜯고 있었다. 버슬거리는 밭머리에 이르자 발이 푹푹 빠졌다. 흙이 얼고 녹고 하는 사이 단단했던 땅심이 느슨해졌는지 밭길은 노곤하게 풀려 있었다. 봄 서리가 얼고 녹는 사이 봄풀들은 마실을 나왔다. 봄볕이 좋아 옴폭옴폭 나순개가 자리잡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여린 잎을 잡고 쏙 뽑아 올렸다. 내 코끝에 뿌리를 대본다. 고소하고 들큰한 젖 냄새라니……. 초유 같은 그 향기에 나의 가난한 혈액들이 울얼울얼 모여 들었다. 겨우내 흘러서 비쩍 마른 내 혈관이 쭈뼛거리며 일어서더니 주눅들어 있던 모세혈관까지 흔들어 깨웠다. 좀 더 큰 나순개를 힘주어 당겨보았다. 뿌리 끝의 저항이 단단했다.
바람 찬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일어난 목숨붙이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붙잡고 있는 저 풀들은 발끝에 얼마나 많은 힘을 주고 있을까. 땅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뽑혀 나온 뿌리는 맹렬하게 향내를 뿜어댔다. 실패가 독이 되고 버림이 독이 되었던 나에게 나순개의 꼬순내가 단단한 틈을 파고 들어와 푸실푸실 해독을 하기 시작했다. 얼었던 심장이 풀리고 기지개를 켰다. 몸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끌려 들어와 마음의 응달에 볕이 들었다. 한 줌의 빛오라기를 그 속에서 추슬러내면 그 다음의 시간을 거뜬히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엷게 된장을 풀고 무를 삐져 넣어 시원한 냉잇국을 끓여 내셨다. 허여멀건한 얼굴이었지만 미역국을 먹는다는 것, 감히 기름기가 둥둥 뜬 미역국은 바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몸 안에 그은 상처를 몸 밖에서 싸매느라 저리 분주하신 어머니의 굽은 등에 고개가 숙여졌다. 싸매주려고 속치맛자락을 찢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몸이 옆으로 자꾸 넘어지는 것을 꼿꼿하게 세워야 했다. 작은 상 위에 올라있는 냉잇국에 숟가락을 담그며 겨울을 품고 봄을 달려온 기특함에 힘을 내야 했다. 쫑쫑 다진 달래장과 파래김이 도망간 입맛을 불러왔다. 우거지에 참기름을 넣고 개운하게 무쳐낸 것을 특히 좋아했던 나의 입맛을 기억해 내신 어머니의 자상함이 소박하게 차려져 있었다.
하얀 냉이꽃 같은 눈물이 상 위로 떨어질지 몰라 나는 밥을 꾹꾹 말아 허기진 심장에 퍼 넣었다. 국 대접 밑바닥이 하얗게 드러나도록 싹싹 긁어 먹었다. 산다는 것이 때로는 지독한 역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난한 어미를 찾아온 아이에게 내 밭을 내주지 못한 회한은 어디로 갔을까. 뻔뻔한 내가 거기 있었다. 순간순간 몸밭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내가 가여워 어머니는 봄볕 같은 저녁상을 차려내주셨다. 제 새끼를 버린 딸의 아픔을 말없이 같이 앓으셨을 것이다. 긴 겨울을 이기고 돌아온 봄나물들을 들여와 시들고 멍든 마음에 생기를 넣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목울대를 넘긴 음식들이 꼬였던 속을 풀어주었다. 음식이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누룽지를 끓이셨다. 구수한 숭늉을 퍼주시며 자꾸자꾸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먹어야 힘이 난다 하셨다. 남은 새끼들을 키워내려면 기어이 그해의 봄을 억지로라도 삼켜야 한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냉잇국은 식은 봄에 김을 올리며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小雪날 / 김 삼 복
휘모리장단으로 노래 부르다 손 털고 떠나버린 은행나무 우듬지 위로 눈송이 두어 개가 흩날리고 있다. 제대로 눈은 내리지도 못하고 흐리기만 한 오후, 방금 도착한 비닐봉투를 멍하니 보았다. ‘기어이 보냈구나. 뚝배기에 끓여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보내준 이의 마음일 텐데’. 단톡방에 “오늘 집에 없으니 가지고 오지 말아요”라는 다른 신우의 글은 이 선물을 받는 모두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병든 몸을 이끌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지음의 아내가 보낸 선물이니 말이다.
지음의 고향은 남해 어느 섬, 그는 붉은 동백이 뚝뚝 산화하는 숲속에서 산양처럼 자란 섬 소년이었다. 해당화가 모래 둑에 옹기종기 피어있는 오지의 섬은 아름다웠지만 춥고 가난하였다. 어머니를 잃고 섬에 남은 동생들은 아버지를 따라 멸치잡이 어부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음도 어부, 육지 것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 까만 머리카락에 거짓말처럼 한 줌 흰머리가 이마 위로 나 있던 사람. 우직한 손가락으로 흰머리를 쓸어 넘기면 포말처럼 흰 물결이 눈썹 위로 퍼졌던 파도를 이고 있던 남자. 그렇게 강단에서 환하게 빛나던 분이었다.
지음이 병원 안에서 힘겨워할 때 마지막 잎새를 그의 창문에 그려주고 싶었다. 하루만 더, 한 계절만 더, 수 없이 기도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그의 산속 오두막으로 돌아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셋집 옥상에 푸성귀를 기르던 그의 정원으로 제발 되돌려주시기를 바랐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길에서 밀려나기에 너무나 젊은 그는 늑골 한쪽이 무너져 가면서도 바위처럼 의연했다.
지난봄, 모처럼 환한 햇살이 좋아서 우리는 지음을 만나러 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병원비를 보태기 위해 묵직한 봉투를 준비하고 과일과 아이들 간식을 마련하였다. 모두 밝게 웃으며 지음의 수다를 들었다. 산속에서 묵언으로 지내다 오랜만에 도시의 지인들을 만난 터라 지음은 약간 흥분해 있었다. 얼굴빛도 편안해 보였다. 아프고 나니 모든 것이 다 선물 같다고 하였다. 지음 부부는 흔들림 없이 그렇게 마지막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돌아오던 차 안에서 우리 모두 말을 잃은 지난봄을 기억한다. 어쩌자고 그 봄의 철쭉은 철없이 더 붉었는지 그 역설을 생각한다.
지음의 영정 속 한 줌 흰머리를 흐린 눈으로 보고 또 보았던 여름도 가고 오늘은 으슬으슬 춥고 쓸쓸한 小雪이다. 흩어지는 흰 눈을 잡아보려 베란다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 김 삼 복
소경이 어느 날 눈을 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버렸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몸 전체의 감각을 동원해 길을 찾았는데 이제 눈에 들어오는 온갖 현란한 것들에 사로잡혀 길을 잃어버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소경에게 화담 선생이 말했다.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박지원 열하일기-
독자들이여, 여기서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를 소경으로 평생 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완전 넌센스다. 화담의 요지는 현란함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본분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리라. 이목에 좌우되어 대상의 본래 면목(面目)을 보지 못하는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라는 예일 것이다.
한 친구가 있다. 오랫동안 잊었더랬다. 누군가 이름을 말해주기 전에는 결코 생각조차 하지 않을 친구였다. 그런데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세상에선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상대방이 먼저 내 연락처를 알아내어 친구 신청을 요청하고 그 뜻을 수락하면 서로의 사생활을 조금 알 수 있는 사진이나 소식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 친구의 카카오 사진들은 여성 잡지책에 나올 법한 주거 공간,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 최신 유행의 패션, 청담동에서 잘 나가는 카페나 최고급 레스토랑 등으로 화려했다. 집안 곳곳에 예쁘게 장식해 놓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가구들 외에도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는 커피도구들과 외제 커피 잔 세트들이 가득 들어 있는 거실장이 유독 내 눈에 띄었다. 거기에 레이스 뜨게와 퀼트로 손수 만든 페브릭들이 쇼파며 거실의 엔틱 의자나 식탁까지 그림처럼 산뜻했다. 고급 피부 샵의 관리로 40대인데도 20대 꿀 피부 같은 얼굴을 줌인(zoom in)으로 찍어서 보내 준 그녀의 상큼 발랄한 프로필 사진하며 가끔 남편이 선물해 준다는 명품가방과 새파란 지폐로 만든 돈다발들은 소도시에서 평범하게 사는 나에게는 강 너머 저쪽 세상이요, 별나라였다.
빛이 환하면 그림자가 어둡다고, 다른 사람이 발하는 빛이 환할수록 내 뒤로 드리운 그림자가 더 어두워지는 것인지라 질투 없이 즐거워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기가 팍 꺾여 친구신청을 끊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뚝 거렸다. 순간 온 몸이 화끈해 졌다.
‘이것도 남을 시기하는 마음이지…….’ 분명 친구도 남에게 말 못할 아픈 구석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픔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이렇게 자랑하는 너도 분명 숨기고 싶은 열등감이 뒷면에 붙어있을지도 몰라!’ 하며 자위해본다. 내가 시기하는 마음이란 실은 내 견문이 좁은 탓일지 모를 일이다. 신(神)의 눈으로 보면 모두 평등할 테고, 이 편협한 시기심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런 평등안(平等眼)을 기르는 것일 게다.
보는 것의 위태로움이란, 내가 보는 눈을 통해 아는 것을 유일한 앎의 창으로 여기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각을 유일한 앎의 원천으로 삼을 때 삶은 얼마나 위태롭고 천박 해질 것인가. 그녀가 올려놓은 호화찬란한 사진들과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내 눈이 온통 그런 줄 알고 믿으면서 시기심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열기 빠진 눈을 가진 못난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있을 터인데 말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의문점도 보이고, 그녀의 뇌꼴스러운 사진들을 보며 내남없이 아파할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심안의 부덕이 아쉽다 싶어 오히려 마음이 짠해진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된다고 했을까.
마음과 생각이 일그러짐 없이 둥글고 충만하여 보름달 같다면 참 좋겠다. 호수 같은 마음에 누군가 돌을 던진다. 그 돌이 유혹이든, 미움이든, 시기와 질투든 참지 못하고 반응하면 하는 대로, 꾹 참지 않으면 않는 대로 마음은 이지러지고 흔들린다. 욕망 없이 사랑하고 질투 없이 잘한 일을 즐거워해주며 어디서나 연민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만족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지 않고 슬퍼서 울거나, 내 것을 한심해 하거나, 비교하여 내 자신을 초라하게 여긴다면 어두운 그림자만 더 길게 드리울 뿐이다.
오늘도 그녀의 카스가 새 소식란에 뜰 것이다. 질투심이 움찔거릴까봐 슬슬 두려워지는 나에게 나는 명령한다.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