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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黑瓷 . 자투리 / 남 지 은

장대명화 2022. 3. 31. 17:36

                                                                흑자黑瓷 / 남 지 은

 

암흑을 연상케 하는 흑석, 그것은 한낱 돌이었다. 아무리 뜯어봐도 도무지 감정교류 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차갑게 느껴져서 다가서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도 아닌 것이, 남의 나라 국보가 된 막사발도 아닌 것이, 검은 유약을 발라 구워 놓은 듯, 도자기처럼 광택을 내고 있었다. 이것은 어느 암흑시대에 구워진 흑자이다.

그 암흑시대는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고 밤만 계속 되었을 것이다. 밤이 계속되는 하늘 아래서 구워진 흑자는 보이지 않는 암흑세계에서나 빛날 일이라며 무시해버리고 싶었다. 개명천지에서는 별 볼일 없는 것이라고 옆의 다른 수석 쪽으로 발길을 돌려 버렸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려 발길을 멈추었다. 다시 눈길은 흑자 위에 머물렀다. 쏴아 바람을 일으키며 여인의 휘날리는 머릿결이 그 위에 나타났다. ‘아니!’ 깜짝 놀라며 흑자 앞에 다가 섰다.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내 눈에 여인은 두 개의 봉긋한 젖가슴을 내밀었다.

형태는 정방형이지만 그렇다고 모가 나지 않은 흑자는 젊은 여인을 숨기고 있었다.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휘날리는 머리 결과 봉긋한 가슴만으로도 젊은 여인의 체취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금방이라도 돌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자세의 흑자 여인. 무엇 때문에 이목구비를 숨겼을까. 없는 실체에 대한 호기심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게 했다. 여인은 암흑시대의 전령으로 무언가 이 시대에 전할 절체절명의 메시지라도 가지고 왔을까.

그 메시지를 듣고야 말겠다는 듯 나는 귀를 기울였다. 뭔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너무나 할 말이 많아 아예 이목구비를 숨기므로 바라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는 그녀의 메시지 아니 절규는 무엇일까.

사람은 일생 동안 수많은 절규를 삼키며 사는 것이다. 만사형통이면 행복이 따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높은 산에 올라가 맘껏 내지르고 싶은 절규 그것을 삼키며 살다보면 쾌감을 느낄 때도 있지 않은가. 흑자여인도 높은 산에 올라가 무언가 절규하다가 천지개벽에 의해 돌 속의 여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닷물이 끓어 넘치고 하늘과 땅이 맞닿는 그 무시무시한 저주에 질탕한 제물이 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흑자여인의 현신現身은 어떤 위대한 성인의 그것처럼 고귀하게 느껴진다.

자꾸만 숨겨놓은 이목구비에 궁금증이 이는데 현실 속의 또 다른 여인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난치병인 희귀 눈병을 앓고 있어 시력이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출입이 부자유스러워 자주 만나지 못하고 가끔 통화만 한다. 전화를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소상히 하면서 그저 허허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는 항상 바람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 웃음만이 그녀를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을 줄 안다.

어디서나 거침이 없던 그녀가 보이지 않는 무엇에 의해 허물어져 있는 것을 현실은 받아들이라고 한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또 익숙하게 되고 그러면서 터득하는 게 인생일까.

며칠 전, 참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버스의 노선 번호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어느 은행에서 기다리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은행에 도착했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그녀가 내 시선 속에 들어오자 마음부터 조심스러웠다. 가까이 다가가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흐린 초점으로 “응! 지은 씨.” 하며 나를 바라본다. 오랜만인데도 차마 웃을 수가 없어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껴안았다. 위로 받아야 될 그녀가 오히려 “괜찮아.” 하고 웃는다. 한쪽 팔을 부축하고 걷는 나에게 “합병증으로 손톱이 빠졌어.” 하며 손을 보여 준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합병증 증세를 얘기하다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 이젠 비우고 산다.”며 또 허허 웃는다. 복잡 미묘한 감정을 숨기고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웃음 같지는 않다. 나의 부축에도 연신 발을 헛디디면서 그렇게 솔직하게 웃을 수 있다니. 그 모습은 내 가슴속에 가랑잎 몇 개쯤 깔아 놓는 일이다.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도 온갖 환상의 노예가 되어 조바심치는 나. 결국 모든 환상과 고뇌도 내 속에서 만드는 것. 그것을 몰아내면 그렇게 솔직하고 자연스런 웃음이 나오는 것일까. 상처야말로 자기 정신의 시발점이라고 하던 어떤 연사의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 순간이다.

흑자 여인을 보다가 왜 그녀를 떠올리게 되었을까. 어딘가 모르게 두 여인이 비슷한 처지라는 느낌만 있을 뿐, 무엇이 비슷하다고 확실하게 꼬집을 순 없다. 흑자여인이 돌 속에 갇힌 채로 애처롭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녀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게 된 것이다. 영영 나타나지 않을 흑자여인의 이목구비에 대한 궁금증은 없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타이르는 듯했다. 그것이 있고 없음의 진정한 합일인 것을.

일본의 국보 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백제에서 건너 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또 조선에서 건너간 막사발도 ‘기자에몬이도’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국보가 되었다. 이기적인 일본인들이 타국의 막사발을 국보로 지정하기까지는 수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은은한 비파색을 띠고 온유함과 자연스런 선의 그 차완은 일본 다인茶人들의 도道며 예禮다. 그들은 유약을 발라서 구운 한낱 흙덩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다도를 즐겼다. 돌덩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그럴듯하게 보일까.

그렇다면 나도 오로지 심안으로 바라보았던 흑자에게 의미 하나를 부여해야 할 것 같다.

 

                                                              자투리 / 남지은

 

  서랍 여는 소리가 뻐근하다. 너무 오랜만에 열어주니 그동안 쌓였던 먼지와 고적함이 서로 뻐걱대는 소리다.

여러 개의 서랍 중에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칸이 있다. 그 속에는 버리기엔 아깝고 딱히 사용처도 없는 자투리 천과 머리타래와 보자기 등이 있다. 1년에 한두 번 열까말까한 이 서랍을 열 때는 마른기침을 한 번 하고 연다. 적요에 길이 든 서랍에 오랜만에 관심 두는 것이 좀 미안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머리타래에 좀이나 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서랍을 여는 순간 고이 잠자던 먼지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켠다. 위로 아래로 너부러지는 먼지들을 모르는 체하며 이것저것 뒤적인다. 가위자국이 선명한 상처를 안고 수십 년 서랍 속에서 잠자는 자투리 천들을 위로하듯 살살 달래가며 공기도 쐐주고 나프탈렌도 교체해 준다.

 이제는 애틋할 것도 없는 이것들과 인연의 끈을 놓아줄까 생각해 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놓아주기 전에 이것들이 먼저 끈을 놓고 세상구경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프탈렌 냄새에 절어 잠만 자느니 단 한번만이라도 밝은 세상을 보고 싶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신문지에 싸둔 머리타래를 펼친다. 나도 한때는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리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 긴 머리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 쳐다보던 추억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는 엉덩이까지 치렁치렁했던 머리에 비녀를 찌르고 전통혼례식을 치렀다. 첫 친정을 가서 삼단 같은 머리채를 잘라내던 미용사가 "미안해서 어쩌지요?" 하면서 건네준 머리타래. 미용사의 손에서 넘겨받은 머리타래를 서랍 속에 넣어놓고 한 번씩 꺼내 선심 쓰듯 나프탈렌을 교체해 준다. '신체발부를 온전히 하는 것이 효도의 시초'라는 성인의 말 때문이 아니다. 숱한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그것을 함부로 버리기가 뭣하여 고이 간직한 것이다. 나 자신의 존재가치도 모르면서 머리타래를 나의 일부라고 우기며 의미 없는 인연으로 묶어둘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했었다.

 자투리 천을 집어 든다. 내가 시집온 이듬해 시어머니는 손수 삼베 한 필을 짜셨다. 그 삼베를 가지고 아버님과 맏아들의 중의적삼을 지으셨다. 그리고 남은 자투리는 맏며느리인 나에게 "나중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적삼이나 지어 입어라". 하시며 주셨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라는 뜻은 아마도 아이를 기를 적에는 삼베옷을 폼 나게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셨을 게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다 자랐는데도 아직 적삼을 지어 입지 못했다. 서랍을 열 때마다 유일하게 나프탈렌을 넣어주는 자투리 천이다. 만지작거리며 적삼 바느질을 어디에다 맡길까 고민하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해왔다.

남편 역시 자신을 위해 지은 중의적삼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젊은 나이에 입기가 좀 어색했던지, 검은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 입는다고 미뤄두었던 것이다. 내가 굳이 입기를 권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푸새와 다림질이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수고와 번거로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을 텐데 말이다.

 남편을 떠나보내던 날 나는 서랍을 모두 열어놓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한참 뒤 그의 옷을 모두 꺼냈다. 중의적삼만은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망설였다. 시어머니의 정성이 밴 귀한 옷인데,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가버린 주인에게 딸려 보내야할지 말아야 할지. 아니면 아들에게 대물림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 끝에 결국 불꽃으로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인에게 딸려 보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이 된 아들의 키가 아빠보다 십 센티나 더 크기 때문이다. 그냥 두었더라면 사이즈가 작아서 아들에게 입힐 수 없게 되었을 것이고, 나는 서랍을 열 때마다 주인에게 딸려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으리라. 이제 그도 저 세상에서 이순의 나이를 넘겼으니 함께 딸려 보낸 중의적삼을 떨쳐입고 시원한 여름을 나지 않을까.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온 세월. 돌이켜 보면 문득 내가 서랍 속에 갇혀 사는 자투리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홀로 남겨졌으니 자투리가 아닌가. 자투리로 사는 삶이 너무 고달팠기에, 힘들었기에 남겨졌다는 피해의식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자주 고개를 삐죽이 내밀곤 했다. 지인들 중에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했다며 위로해 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진정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랬을까. 설령 이해를 못한 채 위로했더라도 고마운 분들이다.

 남겨졌다는 것은 어떤 무책임이 낳은 흔적이다. 가위질을 잘 했으면 남지 않아도 될 것을. 신의 장난에 따라 내 인생도 이리저리 가위질을 당하며 살아 왔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표정이 달라진다. 살아오면서 미모사와 같이 예민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는 괜히 서글퍼지기도 했다.

 자투리와 머리타래는 수십 년간 서랍 속에 갇혀 살았지만 답답해하거나 서글퍼 하진 않는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 점을 배워야겠다.

 

 *남지은 수필가 경북 안동 출생. 1999년 《수필과비평》 등단, 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2009년 ‘신곡문학상’ 수상. 부산문인협회·수필과비평작가회 회원. 수필집 『빈지 틈으로』, 『소보루빵을 사는 남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