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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그 너머에 / 박헬레나

장대명화 2022. 2. 18. 18:16

                                                                                             진실 그 너머에 / 박헬레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첫눈에 마주하는 것이 문갑 위에 놓인 청자 한 점이다. 내가 이 가문에 가솔이 된 지 반세기를 넘었으니 나와의 인연만 헤아려도 만만찮은 시간이다.

 한 자 조금 못 미치는 키에 알맞은 몸매, 단아한 여인을 연상시키는 이 화병은 선대의 유물이다. 내가 낯선 문지방을 넘어와 풋내기 주부로 살림을 익혀가던 어느 날, 아버님은 끈으로 꼽게 묶어 보관해오던 나무상자 하나를 건네주시며 고려청자라고 하셨다. 그 안에는 연비취색 아담한 항아리가 하나 들어 있었다. 말씀은 안하셨지만 잘 간직하라는 당부가 묵언으로 전해져 왔다.

 윗대의 묵은 살림에는 전통 공예품이 많았다. 귀목 반닫이를 비롯해서 문갑과 연적, 물맛이 좋다는 구리주전자. 옥필통, 옥주전자 등 모두가 귀한 물건들이었다. 온양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똑같은 괘목 반닫이를 보고서야 우리 집의 그것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님을 알았다. 후일 어느 잡지 화보에 소설가 박화성 씨의 애장품으로 같은 반닫이가 소개되면서 전국에 두 개라는 토를 달았다. 둘이 아니라 셋이다. 우리집 반닫이의 존재는 나라도 모르는 골동품이다.

 골통품이란 예술적, 역사적으로 그 시대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오래된 물건을 말한다. 적어도 100년을 넘어야 골동품으로 가치가 된다고 하니 지금 그 물건들이 남아있다면 골동품 반열에 들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다. 요즘 옛것에 대한 관심이 대중화되면서 지난 시대의 생활 도구들을 수집하여 소중히 여기며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안목이 일처했던지, 욕심이 없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일찍이 완물상지玩物喪志의 덕을 터득하고 있었던지 그 물건들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지금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나는 옛것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 손떄 묻은 물건에는 세월의 더께와 함께 삶의 애환이 켜켜이 묻어 있는 것 같아 바라보는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아서다. 내 집안의 것이 아니면 어떤 물건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물건에는 한 가문의 역사를 새기는 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이 고려청자만은 예외다. 어떤 경로로 이것이 아버님 손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깨끗하게 잘 보존이 되어 상태가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소중히 간직하시던 귀중품을 당신의 마음을 담아 며느리에게 손수 건네주셨다는 데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다. 더구나 그 귀한 고려청자라니.

 열없이 크지도 않고 미련하게 펑퍼짐하지도 않은 푸른색 몸체에는 가로로 띠를 두르듯 자잘한 흰 국화송이와 잔물결 무늬가 층층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졌고, 짙은 비색의 풍성한 허리 부분에는 난 잎인 듯 풀잎인 듯, 대나무가지가 호를 그리며 휘어져 있다. 무늬를 새겨 넣었다기보다 작가 자신의 꿈을, 예술혼을 혼신을 다해 수놓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 키우며 대가족이 웅성거릴 때는 행여나 다칠세라 고이 모셔두었다가 내 삶이 다소 한가로워졌을 때 문갑 위에 앉혀 세상 구경을 시켰다. 내력을 아는 한 지인은 손 탈 염려가 있으니 함부로 내놓지 말라고도 했다.

 수년 전, KBS 방송국의 '진품명품' 팀에서 대구에 출장감정을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기회에 확실한 검증을 받아보겠다고 그 가보를 대동하고 시간 맞춰 방송국으로 갔다. 예로부터 사대부가 많이 배출된 지역답게 행사장에는 병풍을 비롯해서 고서화와 도자기 등 크고 작은 물건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품고 들려왔다. 가져온 물건들이 종류별로 진열되고 안면 있는 감정사 몇 사람이 분야별로 나뉘어 감정을 시작했다. 모두 기대에 찬 얼굴로 결과를 기다리는 긴장된 시간이었다. 내 시선도 도자기 감정사를 따라 재빠르게 움직였다.

 단숨에 드르륵 훑어 내려가던 감정사가 그 중 도자기 몇 점을 골라냈다. 그 많은 물건을 보는 데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선택된 건 단 두 점, 단번에 뽑혀 우아하게 단상에 올려져 '고려청자'라는 이름이 매겨지리라 기대했던 나의 화병은 불행히도 진열된 자리에 패잔병처럼 앉아 있었다. 분야별로 선택된 물품들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이 끝나자 끝내 감추고 있던 궁금증이 질문으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물질적인 가치, 시세였다. 물건에는 신분이 따라다녔다. 평민이 쓰던 것인가, 귀족이나 왕족이 쓰던 것인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랐다.

 '아니야,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래. 분명히 고려청자라고 하셨어.'

 나는 감정사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행사가 끝날 즈음 조심스럽게 재감정을 요청했다. 설마 이번에야 만져보고 두드려 보며 성의껏 봐주겠지,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겠지, 기대를 걸었다. 그분은 힐끗 거들떠보더니 "일제 강점기 작품입니다."로 일갈했다. 허탈함에 맥이 탁 풀렸다. '당신 감정사 맞소?' 불신을 넘어 나는 그를 밑바닥부터 부정했다.

 아버님은 선인들의 고아한 품격과 예술혼이 깃든 물건들을 귀히 여기셨다. 그 진수를 향유하는 안목과 진위를 가리는 식견을 두루 갖추신 분이었다. 소중한 물건을 그리 허술하게 판단하실 분도, 허풍을 떠실 분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 역시 역사적, 예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저 물건에 어떤 정의를 내려야 할지 한동안 갈등하다가 아버님을 믿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화병이 진품이든 가품이든 나는 모른다. 그걸 분별할 식견도 없을 뿐더러 굳이 밝힐 생각도 없다. 어떤 징표도 기록되지 않은 무명無名의 작품에 진위眞僞를 논하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다. 맹목적인 신뢰가 진실을 왜곡할 위험도 있으나 아버님께 대한 나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다. 설사 아버님의 오판誤判이 있었더라도 내게 내려주신 것은 고려청자다. 귀한 예술품이다. 진실 그 너머에 우뚝 서 있는 것, 엄연한 사실조차도 그 앞에서 무색해지는 것이 신뢰다.

 어느 도공이 혼을 기울여 빚은 작품인지, 문갑 위에 조신하게 앉은 비색 항아리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른다.

 '내 나이는 헤아려 무엇하리, 진위가 무슨 의미인가. 나는 그저 나일뿐인데….'….'

 휘늘어진 댓잎에 바람이 일고 상감된 하얀 꽃잎이 도드라지며 잔잔한 미소를 보낸다. 볼수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