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우수 수필

산정무한 ㅡ 정비석

장대명화 2010. 10. 27. 12:22

                                                 산정무한山情無限 / 정비석

                                                                                

 산길 걷기에 알맞도록 간편히만 차리고 떠난다는 옷치장이, 정작 푸른 하늘 아래서 떨치고 나서니 멋은 제대로 들었다. 스타킹과 니커츠팬츠와 점퍼로 몸을 거뿐히 단속한 후, 등산모 젖겨 쓰고 바랑을 걸머지고 고개를 드니, 장차 우리의 발 밑에 밟혀야 할 일만 이천 봉이 천리로 트인 창공에 뚜렷이 솟아 보이는 듯 하다.

 그립던 금강으로, 그리운 금강산으로! 떨치고 나선 산장에서는 어느새 산의 향기가 서리서리 풍긴다. 산뜻한 마음으로 활개쳐 가며 산으로 떠난 지완과 나는 이미 진고개에 방황하던 창백한 인텔리가 아니라, 역발산, 기개세의 기개를 가진 갈데없는 야인 문서방이요, 정생원이었다.

 차 안에서 무슨 홀개 빠진 체모란 말이냐? 우리조상들의 본을 떠서 우리도 할 소리 못할 소리 남꺼릴 것 없이성량껏 떠들었으면 그만이 아닌가?

 스스로 야인의 긍지에 도취되어서,뒤로 흘러가는 창 밖의 경개를 우리는 호화로운 심정으로 영접하였다. 고리타분한 생각을 남겨두고, 잠시나마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처럼 쾌사였던가? 인간생활이 코답지근하고 답답하기 한없음을 이제서 깨달은 듯하였다. 잠시나마 악착스러운 생활을 벗어나 순수한 자연의 품안에 들어 본다는 것은, 항상 오만한 인간생활의 순화를 위하여 얼마나 긴요한 일일까?

 허심탄회 인화지와 같은 마음으로 전개될 자연들을 우리는 해면처럼 흡수했으면 그만이었다.

 철원서 금강 전철로 바꿔 탄 것이 저무는 일곱시 쯤 ㅡ 먼 시골에서는 황혼이 어리고, 대지는 각일각 회색으로 용해되어 가는데, 개성을 추상당한 산령들이 묵직한 윤곽만으로 서녁 하늘에 웅크렸다.

 고요하기 태고 같은 이 풍경 속에서 순시도 멎음없이 변화를 조종하는 기막힌 조화는 대체 누가 부리는 요술이던가? 창명히 저무는 경개에 심취하여 창가에 기대인 채 마음의 평화를 즐기다가, 우리는 어느덧 저 모르게 가슴 깊이 지녔던 비밀을 아낌없이 털어 놓도록 그만큼 우리를 애워싼 분위기는 순수했던 것이다.

 유리창 밖으로 비치는 지완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의 청춘사에서도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사랑담을 허심히 들어넘기며, 나는 몇 번이고 담배를바꿔 피웠다. 침착한 여인네가 장롱에 옷가지 챙겨 넣듯 차근차근 조리있게 얽어 나가는 지완의 능슥한 화술은, 맑은 그의 음성과 어울려서 귓가에 도란도란 향기로웠다.

 사랑이 그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세상에 사람처럼 쓰라린 것, 매운 것은 없다는데, 지완의 것은 아침이슬 같이 담결했다니, 그도 그의 성격의 소치일까? 창밖에 금풍이 소슬해서, 그 사람이 유난히 고매하게 느껴졌다.

 내금강역에 닿으니, 밤 열시! 어느 사찰을 연상 시키는 순 한국식 거하(巨廈)가 달빛 속에 우리를 반기는듯 맞는다.

 내금강 역사(驛舍)다.

 어느 외국인의 산장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이 멋진 양관의 외금강역과 아울러 이 한국식 내금강역은 산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한 정겨운 호대조의 두 건물이다. 내內와 외外를 여실히 상징한 것이 더 좋았다.

 십삼 야월의 달빛 차갑게 넘실거리는 역 광장에 나서니, 심산의 바람이라 과시 바람은 세찬데, 별안간 계간을 흐르는 물소리가 정신을 빼앗을 듯 소란해서 추위는 한층 뼈에 스민다. 장안사로 향하여 몇 걸음을 걸어가며 고개를 드니, 산과 산들이 벼붚처럼 사방에 우쭐우쭐 둘러선다. 기쓰고 찾아온 바로 저 산이 아니었던 가고 금세 어루만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힘껏 호흡을 들이마시니, 어느덧 긴장도 청수에씻기운 듯 맑아 온다. 청계를 끼고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기 10분 쯤, 문득 발부리에 나타나는 단청된 다리는 이름부터 격에 어울려 함부로 건너기조차 외람된 문선교!

 어느 때 어떤 문사가 예까지 찾아와서, 선경이 어디냐고 목동에게 차문한 고사라도 있었던가? 있을 법한 일이면서 깜짝 소문에조차 듣지 못한 것은, 역시 선경과 속계가 스스로 유별한 탓이었던가?

             

                        차문주가하처재借問酒家何處在

                        목동요지행화촌牧童遙指杏花村

 

 은 속계의 노래로, 속계에서는 이만하면 풍류객이렷다. 동야류의 선경이란 풍류객들이 사는 고장을 이름이니, 선경과 속계는 백 지 한 겹밖에 아닌 듯이 믿어지니, 이미 세진을 떨치고 나선 몸이라 서슴지 않고 문선교를 건너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해선 일찌거니 눈이 떠진 것은 몸에 지닌 기쁨이 하도 커진 것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었던 영봉들을 대면하려고 새댁 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하게 자태를 엿볼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깐운 데의 전나무 .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뛸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문실문실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야산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조반 후 단장 짚고 험난한 전정을 웃음경 삼아 탑승의 길에 올랐을 때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 산악이 열병식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있는데, 첫눈에 동자를 시울리게 하는 만사의 색소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것인가 보다 하였다.

 만학 천봉이 한바탕 흔들리게 웃는 듯, 산색은 붉은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청이 있고, 녹이 있고, 등이 있고, 이를테면 산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얼핏 보기에 주홍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터클의 조화던가?

 복잡한 것은 색만이 아니었다. 산의용모는 더욱 다기하다. 혹은 깍은 듯이 준초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틍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용모 풍취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이 아니다.

 산의 품평회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이다. 장안사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 우거진 것은 무두 잣나무 뿐인데, 도시 이등변 삼각형으로 가지를 늘이고 섰는 품이,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고여 놓은 차례탑 같다. 부처님은 예불상만으로는 미흡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을 베풀어 놓으신 것일까? 얼핏 듣기에 부처님이 무엇을 탐낸다는 것이 천만부당한 말같지마는 탐내는 그것이 물욕 저편의 존재인 자연이고 보면, 자연을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곡을 끼고 돌며 몇 구비의 협곡을 올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만 찻집이 있다.

 다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 부앙하여 천지에 참괴 없는 공명한 심정을 명경지수라고 이르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지니고 온 악심을 여기서만은 정淨하게 하지 아니치 못하는 곳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려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 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황청담을 발밑에 굽어보며 반공에 위연히 솟은 층암절벽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유무를 이 명경에 비치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영자影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품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측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태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끊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를 명경에 영조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에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등극하실 몸에 마의를 감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이 말하는 전생의 연緣일는지 모른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처럼 막아서는 옹자가 석가봉, 뒤로 맹호같이 덮누르는 신용이 천진봉! 전후 좌우를 살펴봐야 협착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몸에 감길듯이 정겨운 황천강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을 길잡이에 들어가며, 쉬엄쉬엄 갈어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 같이 유수한 수림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이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한 화원이요, 벽공에 외연히 솟은 봉봉峯峯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오른 한 떨기 한떨기 꽃송이다. 산은 때 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 요란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신화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진주홍을 함빡 빨아드린 해면 같이 우러러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을 몰랐다. 지오나 형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봉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 짜면, 물에 휑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애릴 것만 같다.

 그림 같은 연화담 수렴폭을 완성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와 목잔과 철삭을 답파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3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ㅡ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5천 척의 망군대ㅡ아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은 바로 지호지간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은 단걸음에 건너 뛸 정도로 가깝다. 그 밖에도 유상무상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에 할거하는 영웅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밑은 천인단애 무한제로 뚝 떨어진 황천계곡에 단풍이 선혈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신부머리의 칠보단장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스란치마폭 같다고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생글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는가 어느 구석에서 금세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저물 무렵에 마하연의 여사旅舍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인가 어서 오십사고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은 무루익은 머루알 같이 고왔다.

 여장을 풀고 마하연사摩何衍寺를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이어서 불경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30명은 됨직하다. 이런 산중에 웬 중이 그렇게도 많을까?

 

                                    무한청산행욕진無限靑山行欲盡

                                    백운심처다노승白雲處多老僧

 

 옛글 그대로다.

 노독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동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

 하며 불을 바라보는 지완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 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엤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에 낙화송이 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서니, 날씨는 르려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이 몸에 신산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보면 바람 소리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누 아니다. 아마 필시 바람소리와 물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가 등잔 아래에 오롯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은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품이 춘향이 태형 맞으며 백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 쓴 장화가 자겨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배리아로 정배가는 카츄샤의 뒤를 네프 백작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 갔다.

 

 자꾸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이 발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욱하고 음산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은제 금제에 다다랐을 때 기어코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연무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 없다. 우장 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진광풍이 어디서 불어왔는가, 획 소리를 내며 운무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폭 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엇바꾸어 가며 짜 놓은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는 꽃보다 단풍이 배승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를수록 우세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 속에서 홀현홀몰하는 영봉을 영송하는 것도 가히 장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로 내리붓는다. 일만 이천 봉은 단박에 창해로 변해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 데 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고 섰던 동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같은 날로를 애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용호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로하신 것일까? 경천동지도 유만부동이지 이렇게 만상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장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진다. 변환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봉이라는 암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이는 운해뿐 ㅡ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다. 내 . 외 . 해삼금강을 일망지하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일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 6천 척에 다시 신장 5척을 가하고 오연히 저립해서 만학 천봉을 발밑에 꿇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에 군림하는 쾌승장군보다도 교만해진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흐니 자작나무의 수해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 맺혀 있는 용마석 ㅡ 마의태자의 무덤이 철책도 상석도 없고, 풍림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창명히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된 태자의 애기 용마의 고영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는 듯, 소복한 백화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이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년 사직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俚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마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하다가, 한 우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