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매수필

세한도歲寒圖 / 목 성 균

장대명화 2022. 1. 25. 07:34

                                                        세한도歲寒圖 / 목 성 균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 해가 설핏한 강나루 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 배가 강 건너편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입에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건너편 강 언덕에는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노랗게 식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수양버드나무가 맨 몸뚱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서 고목인 듯싶었다. 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
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하얗게 번쩍거렸다. 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오리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 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 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안 하셨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 안에서 방문의 쪽문을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지 싶다. 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 이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 힘겨운 시대를 견뎌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 주루 막 안에는 정성 들여 한지에 싼 육적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 제주로 쓸 술이 한 병들어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다.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