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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사(調律師) / 박 금 아 (2015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장대명화 2021. 10. 23. 05:35

                         조율사(調律師) / 박 금 아 (2015 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이른 봄을 마실 나온 햇살 한 조각이 하얀 건반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띵.띠이잉.”여러 번의 두드림에도 침묵하고 있는 흰색 건반‘솔’,제소리의 높이를 기억할 수 없다.옆지기‘파’와‘라’의 중간쯤이었으리라.엄지와 중지의 지문이 기억하는 어렴풋한 자리를 더듬더듬 찾아간다.

 조율사가 왔다.목발을 짚은 그를 따라 그의 아내도 함께 왔다.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한 손에 큰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남편을 부축하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였다.

 

 조율사는 건반을 눌러 현의 울림을 들었다.청진기를 대듯 심장의 박동으로 혈류를 감지하고 숨소리로 심폐 기능을 진단했다.쿨럭쿨럭.시기를 놓친 폐렴처럼 쇳소리 같은 기침이 새어나왔다.공명판에 탈이 난 모양이었다.집 안은‘수술 중’사인이 켜진 병실 같았다.나는 가족의 수술대를 지키는 마음으로 조율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부는 조율의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있었다.말이 없어도 제때에 다가가 도움을 주는 곡진한 모습은 강약이 잘 짜인 악보의 한 소절 같았다.독일 병정을 닮은 남편의 포르테와 산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깨금발을 옮기는 아내의 피아니시모가 이룬 완벽한 하모니였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생각났다.원룸으로 초대한 그녀는 별거 중이라고 했다.늦가을 낙엽같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나는 멍해졌다.가출까지 감행한 결혼이었다.서울 부잣집 외동딸과 가난한 농가 장손의 만남은 캠퍼스에 순애보를 남겼다.결혼 후,그녀의 나날은 남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그랬던 그녀가 변했다.일 년 전,남편이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서부터였다.비서가 남편을 도우면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한층 패기 넘쳐 보이는 남편을 인정할수록 자신은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가,남의 삶을 산 것 같다며 울음을 터뜨렸다.남편도 아내를 이해하기는커녕 결백만을 주장했다고 한다.최선을 다해 달렸을 뿐인 그로서는 황당했을 수도 있었겠다.결국 그는 아내의 완강한 별거 제의에 응하고 말았다.

 

 방 한구석에 놓인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얼마 전에 친정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결혼 전에 자신이 치던 피아노를 가져왔다고 했다.그제야 그녀가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건반을 누르더니 그녀는 금세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너무 방치했었나 봐.소리가 안 나.”

 

 동창들이 전업주부인 처지를 한탄했을 때도 굳건했던 그녀였다.친구들이 오래전에 겪었던 상실(喪失)을 그녀가 지금 앓고 있었다.친구를 혼자 두고 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피아노는 벌써 여섯 시간째 조율 중이다. 88개의 건반과200개가 넘는 현을 가진 피아노는 조화로운 음역으로‘악기의 대명사’로 불린다.사람의 몸도 수천 개의 기관들이 만들어내는 어울림으로 생존을 이어간다.성인의 뼈는206개이고 관절은100개 이상,근육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650개이다.혈관의 길이는96,000킬로미터로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인간의 몸은 수십억 인구 중에 똑같은 세포를 가진 사람이 없을 만큼 정교한 악기이다.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횟수의 조율이 필요한 걸까.

 

 조율사는 피아노의 외장(外裝)을 살폈다.이십 년을 옮겨 다녔으니 수난의 흔적이 역력했다.힘든 수술을 끝내고 환자를 인도하는 심정이었으리라.

 

 “보물입니다.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리이지요.”

 

 그들 부부의 삶이 궁금해졌다.

 

 “두 분 사이에 특별한 조율의 방법이 있나요?”

 

 “흠집은 조심해서 고쳐야 합니다.무리해서 없애다 보면 고유 음을 잃고 말지요.소리 속에는 상처의 크기와 무게가 다 계산되어 있어요.부부 사이도 그렇지요.”

 

 그들도 긴 조율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축구선수였던 남편은 결혼 초,사고로 다리를 잃었다.마음에도 큰 병이 왔다.몇 년 동안 남편은 방바닥만 지켰다.생계를 대신한 아내의 정성도 외면할 뿐이었다.어느 날 귀갓길에 아내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오랜 치료에도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대신,연이어 찾아온 불행은 남편을 돌아오게 했다.피아노 치기를 즐겼던 그에게 아내는 함께 피아노 조율을 배우기를 권했다.

 

 그가 상기된 얼굴로 건반을 눌렀다. ‘종달새의 비상’*이었다.붉어진 귓불 곁으로 종다리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올랐다.아내의 단아한 눈빛이 남편의 눈길을 따라 새가 날아간 창문을 넘어갔다.부부의 모습이 황혼녘에 쟁기질을 끝내고 산비탈에 서 있는 겨리소처럼 정다웠다.부부란 삶의 파고(波高)에서 생긴 흠집까지도 보듬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소리를 만들어가는 조율사들이 아닐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에 앞서 늘 악기를 튜닝한다.한 시도 쉬지 않고 스스로를 변주(變奏)시키는 소리의 성질 때문이다.친구네 부부에게도 튜닝이 필요할 게다.처음엔 불협화음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테지만 조율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변형되기 이전의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게다.어쩌면 그들은 벌써 튜닝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별거는 조율을 위한 잠깐 동안의 해체일 뿐이니까.

 

 이 밤에도 친구는 잃어버린 음(音)을 찾아 건반을 더듬거리고 있을 테지.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전화를 걸었다.

 

 “얘,조율사를 보내줄게.”

 

 

                                                    꽃등(燈) / 박 금 아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건너에는 작은 사찰이 있다. 일주문과 불탑은 물론, 대문도 담도 없다. 조악하게 올린 기와 아래에 대웅전(大雄殿)이라고 쓴 나무 현판만 없다면 일반 가옥과 다름없는 밋밋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부처님을 아파트 앞까지 내려오시게 했을까. 하긴 교회도 성당도 사람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데 절만 깊은 산 속에 있으란 법 있을까. 애초에 사람 곁에 있던 절을 깊은 산중으로 내쫓은 것이 간사한 인간들 아니던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었다가도 이웃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거지에는 불쑥불쑥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떨어진 거리라고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정도여서 절집의 일상은 아파트에 고스란히 담겼다. 새벽 네 시면 목탁 소리가 들려오고, 아침 열 시면 스님의 설법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여름이면 독경 소리가 녹음테이프를 타고 해넘이까지 흘러나왔다. 그만으로는 참을 만했다. 사찰 마당 빨랫줄에서 사흘이 멀다, 하고 옷가지가 펄럭이는 풍경은 꼴불견이었다. 가사와 장삼은 물론, 여염집 남정네도 아닌 스님의 아래 속옷이 대명천지에 너풀대는 모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민망하여 눈길을 돌렸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절집 바로 앞길은 관악산으로 오르는 입구여서 등산객들조차 아연한 풍경에 쓴웃음을 보내곤 했으니 동네 말썽꾸러기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그새 정분이라도 든 걸까. 슬슬 절집 안이 궁금해지면서 언제인가부터는 기웃대기까지 했다. 아파트 마당을 거닐다가도 가까이에서 눈을 치켜뜨기만 하면 법당과 서가, 선방(禪房) 내부가 햇살에 비친 스님의 속옷 솔기처럼 훤했다.
  며칠 전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절집은 땅거미가 내리도록 발 디딜 틈 없어 보였다. 잿빛 생활 법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하얀색 등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더니 감나무 아래로 가서는 감꽃 가지에 걸었다. 연등에 달린 이름자가 바람에 나부꼈다. 여인은 리본을 쓰다듬으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낯이 익었다. 기억을 더듬고 보니 그녀였다. 몇 해 전, 사고로 아들을 잃고서 우울증을 앓다가 이사를 한 5층 주민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인데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합장을 해 보이기에 나도 엉겁결에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 후에 고개를 드니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웅전 맨 앞자리에서 백팔 배인지 천 배인지 모를 절을 하염없이 올리는 그녀를 겨우 찾았다. 그녀가 걸어 둔 연등을 올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사찰과 아파트 사이 좁은 가로수 길을 따라 색색의 등이 내걸렸다. 머리가 하얀 초로의 여인이 파란색 등을 걸고 있었다. 산길 산책길에서 자주 만난 아주머니였다.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며칠 전에 태어난 손주라며 핸드폰을 열어 보였다. 그 뒤에서는 또 한 여인이 빨간 등을 달아놓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연등 아래에 매단 이름자가 선명했다. 마흔이 넘은 딸의 배 속에 있다는 태아의 이름이라며 조심조심 읽었다. “행 ‧ 복 ‧ 이”
 흰색 등을 든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한 송이 흰 꽃으로 피어난 것 같았다. 흰 등 아래를 지날 때면 나도 숙연해졌다. 그때 한 얼굴이 떠올랐다. 세상을 떠난 지 삼십 해가 훌쩍 넘은 이름이었다. 그 순간에 왜 그가 생각났을까. 그에게도 한 개의 등이 필요했던 걸까.
  절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양, 노랑, 분홍, 빨강, 파랑, 초록. 크기가 제각각인 등이 저만의 빛을 품고서 등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흰색 등 하나를 골랐다. 연등 파는 여인이 붓 펜을 건네다 말고 가만히 볼웃음을 지었다. 내 손에 낀 묵주반지* 때문이었을까. 다시 붓 펜과 리본을 주며 물었다.
  “누구 이름으로 시주하시겠습니까?”
  기억 속 이름자를 썼다. 그런데 그 이름만으로는 허전했다. 새 리본을 받아 가톨릭 세례명까지 꾹꾹 눌러 썼다. 행렬을 따라가다 맨 끝자리에 연등을 걸고 보니 망자의 얼굴이 꽃으로 피어나는 듯했다.
연등 아래를 걸으며 꽃받침 아래에 쓰인 이름자들을 되뇌어본다. 송이송이 연꽃이 피는 자리마다 어둠이 사라진다. 저만치에 잠시 밀쳐둔 어둠이 아니다. 어둠살을 그러모아 만든 빛이다. 태어나지 않은 배 속 아기도, 세상을 떠나 저승을 사는 사람도 이승의 어두움을 밝힐 수 있다니……. 그보다 더 큰 위안이 있을까. 자신이 행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이승에서 한 번 생명이었던 적 있는 것은 다 꽃이 되고 빛이 될 수 있단다. 만물이 꽃등(燈)이다.
  오늘도 절집 빨랫줄에는 빨래가 나부낀다. 풋! 웃음이 난다. 그러고 보니 스님의 속옷이 펄럭이는 길가, 이곳이 부처가 제자들에게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했다는 영산(靈山) 아닌가. 어찌 이 자리뿐일까. 내가 서 있는 곳곳이 예수와 공자, 여러 성인과 현자들의 말씀을 듣는 성전(聖殿)이요, 강당이다. 한 발짝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도 없이 진리를 들었음인가.
예서 제서 꽃등(燈) 벙그는 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