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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 / 배 해 주

장대명화 2021. 9. 5. 16:37

                                                               석송령 / 배 해 주

 

  세월의 풍상을 묵묵히 견디어 온 소나무 한 그루가 의연하다. 나무가 재산세를 내고 있다는 바로 그 석송령이다. 천연기념물 제294호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뿌리를 내 린지 600년, 가슴둘레 4.2m, 높이10m나 되는 반송, 일명 부자나무의 신상명세서다. 그 주위를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올리며 무슨 사연이 있는지 나무 둘레를 돌고, 할머니 머리 위로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추색이 깊어가는 시월 중순의 휴일, 그리운 첫사랑을 찾아 떠나듯 그 나무를 찾아 나섰다. 마음은 하늘의 구름마냥 가볍고 천지는 가을빛으로 도도하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어서다. 거기에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듯 나무 둘레를 쇠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다. 주변에는 높다란 은행나무와 단풍 몇 그루가 옹기종기 이마를 맞댄 채 가을 시어를 토해내고, 여린 2세목 두 그루는 모송의 피가 흐르는지 자태가 꿋꿋하다. 그 옆으로 높다란 피뢰침이 나무의 소중함을 말해주고 있다.

 600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었다. 그때 석관천石串川에 떠내려 온 어린 소나무를 어느 과객이 건져 심은 것이 천향리의 동신목洞神木이 되었다. 1930년에는‘이수목’이란 마을 사람이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의 소유 토지 6,600㎡을 석송령에게 상속하여 기이하게도 나무가 토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보통사람은 땅 한마지기도 귀하여 소작을 하던 시절인데 아마 평범한 나무가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로 인해 세금을 납부하는 지구상에 유일한 부자나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에 소나무의 모습을 담는다.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수많은 가지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객사 기둥 같은 콘크리트 지주도 모자라 쇠 지주대 30여개가 몸을 받치고 있다. 붕대를 감아 깁스를 한 듯 불편한 모양이다.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석송령도 그 길을 비켜나지 못하는 것일까? 한줄기 가을바람이 갑자기 안쓰러움이 되어 불어온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소나무에서 찾을 수 없는 신령한 기가 느껴지고 생과 멸의 섭리를 진작 지득한 것 같아 보통 소나무로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석송령 둘레를 도는 이유가 바로 그 신령한 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세월에 감사해 하고, 자식들의 평안을 빌고 있었으리라.

 렌즈 속 깊숙이 피사체를 당겨 본다. 껍질이 윤기를 잃어 거북이 등짝 같다. 그 조각 하나하나에 세월이 담겨 있고, 세상일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마디에 옹이처럼 웬 가지가 그리 많은지 궁핍한 시절에 자식이 줄줄이 달린 것과 같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노란 소나무 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떨어진 잎사귀 그 자리에는 여린 새순이 보인다. 그 순간이 끝이고 끝이 곧 시작임을 몸으로 말해 준다. 경전 속에 있어야 할 윤회의 법칙이 거기에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잠이 줄고, 청력과 시력이 약해지는 반면 말수가 많아진다는데, 석송령도 그럴까? 바람에 일렁이는 가지 끝으로 옛말이 생각난다. 늙으면 보고 듣는 것이 적어야 그만큼 잔소리가 줄어든다던데 이는 창조주의 섭리일까? 석송령도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며 그저 말없이 있어야 할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가을빛에 유영하고 노란 잎사귀는 가을을 품고 떨어진다.

 석송령의 가지 사이로 부는 솔바람에 사명대사의 “청송사”가 생각난다. 소나무가 푸르고 그 초목 또한 군자이니, 서리와 눈이 내려도 시들거나 썩지 않음이로다. 서리와 눈이 내린다 하여 더 무성하지 아니하고, 시들지도 않고 무성하지도 않음이로다. 겨울과 여름에도 내내 푸르기만 하니 푸른 소나무에 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금빛 채질하고 거르는 것과 같으니 바람이 불어오면 거문고 소리가 울려옴 같아라.

 석송령의 처진 어깨 아래로 지난 시간이 펼쳐진다. 소백산 줄기에서 몰아치는 설한풍이 불어도 그때는 추위를 몰랐고, 석관천의 물이 마르는 갈증의 계절도 쉽게 참을 수 있었다. 설한풍은 패기로 맞섰고, 갈증은 한줄기 비로도 충분이 이겨내던 강건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만 같지 않다. 가지를 흔드는 삭풍의 계절이 오면 삼동을 어찌 견딜까 걱정이 앞서고, 갈증을 참아내는 인내력도 예전만 못함을 스스로 느낀다. 삶이 다 그런 거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스치는 계절의 변화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보고 놀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선조 소나무들이 모두 그렇게 살다가 초연히 사라져 간 그 길을 지득한 때문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계절의 순환은 오히려 작은 행복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바로 눈앞에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기지개를 하는 2세목이다. 2세목이 곧 삶이고, 축복이라고 바람이 전해준다.

600년간 자신을 키우고 보듬어 주던 하늘과 땅, 그리고 물과 바람과 함께 고단했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정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지긋이 눈감은 석송령 앞에 여린 2세목 두 그루가 뿌리와 가지에 힘이 솟고, 마음은 벌써 청춘이다. 마을 어귀에 놀던 어린 손주가 석송령 주위를 돌던 할머니를 언제 보았는지 달려와 손을 잡는다. 2세목과 손주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겹쳐진다. 그 속으로 윤회의 깊은 강이 흐르고, 강물 속으로 또 하나의 가을이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