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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며. 꿈꾸는 다락방 (2편)/ 왕 린

장대명화 2021. 8. 8. 02:37

                                                                          빨래를 널며 / 왕린

 

  길을 가다가도 빨래가 널린 것을 보면 공연히 기분이 좋다. 빨랫줄에 하얀 와이셔츠가 걸려 있으면 더욱 그렇다.

결혼하고 아기를 기다리던 때, 우리는 이층집 바깥 베란다가 유난히 넓은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아래층에는 부모를 모시고 여섯 살 된 ‘현이’라는 여자아이를 키우는 주인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은 볕 잘 드는 2층에 올라와 빨래를 널어놓고 가곤 했다. 색색의 옷이 널리면 화분 몇 개가 놓였을 뿐인 그곳 풍경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이 넣어놓은 빨래를 보면 성이 차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표 빨래줄에 길든 내 눈에 대충 걸쳐 놓은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다. 남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 찜찜했지만, 탈탈 털어 주름을 펴고 중심을 맞춰서 다시 널었다. 양말들도 나란히 짝을 찾아 주었다. 부서지는 햇살, 살랑대는 바람 속에서 보송보송 말라가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무료하던 나의 생활에 생기가 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두워져도 아래층에서 빨래를 걷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불이 켜지지 않는 날도 생겼다. 일하는 남자, 건강한 남자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현이 아버지의 하연 와이셔츠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의아스러웠다. 빨래뿐만이 아니었다. 현이네 식구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하늘이 내려앉아 있던 어느 날, 아래층은 조용한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동 버튼에 눌린 로봇처럼 튀어나가 아랫집 옷을 걷어 들였다. 개켜서 밀어 놓은 옷은 남의 집에 하룻밤 신세 지러 온 사람처럼 옹색하고 불안해 보였다.

 저녁 늦게 현이 엄마가 올라왔다. 그녀는 무척 초췌한 얼굴로 번번이 폐를 끼친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남편이 수술하고 입원해 있어서 정신이 없다고도 했다. 옷을 안고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어깨가 한없이 처져 있었다.

 퇴원한 현이 아버지가 기운을 차렸다. 현이의 조잘대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렸다. 빨랫줄에도 와이셔츠가 다시 걸렸다. 내가 빨래를 다시 손봐 넌다는 것을 알 텐데 그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널었다. 나도 놀이 삼아 작품을 만들어 놓곤 했다. 할아버지 품 넓은 옷과 할머니 주름치마 사이에 꼬맹이의 노란 원피스를 걸어 놓으면, 손녀 손을 잡고 산책하러 나가는 행복한 노부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현이 아버지의 셔츠와 표정이 밝아진 현이 엄마의 흰 별꽃 무늬 플레어스커트를 나란히 널면서 혼자 웃기도 했다. 내 집 빨래줄에 황금빛 햇살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우리에게도 기다리던 아기 소식이 왔다. 딸아이가 태어나자 베란다 표정도 바뀌었다. 세대를 어우르는 띠가 만들어졌다. 하얀 기저귀가 걸린 빨랫줄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배가 잔잔한 물결 속에서 출렁이는 듯했다.

 세탁기가 흔하지 않던 때, 엄마는 마당 한편 수돗가에서 빨간 고무통에 물을 받아 빨래하셨다.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와 치대고 비비고 헹구는 소리, 일에 추임새를 넣듯 엄마 입에서 나오는 소리까지 리듬을 타고 어우리지곤 했다. 내 마음속 때까지 그대로 헹궈지는 느낌에서였을까, 땟물이 비누 거품에 쓸려 내려가는 소용돌이 속에 엄마의 주문 같은 쉬쉬 소리가 섞이던 광경은 그 자체로 멋진 퍼포먼스였다.

 집에 있는 날 빨래를 너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엄마가 남자의 자존심인 하얀 와이셔츠를 제일 먼저 헹구듯이 나도 중심점을 찍듯이 빨랫줄 중앙에 아버지의 와이셔츠를 널곤 했다. 엄마는 빨래를 깨끗이 빠는 것만큼 말리는 일에도 신경을 쓰셨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반듯하게 너는 일이 힘에 부쳤지만, 요령이 생기니 재미도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매어 놓은 빨랫줄에 무게가 실리면 바람 따라 나대던 줄도 묵직하게 흔들렸다. 높이높이 바지랑대를 밀어 올리면 줄다리기 할 때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진 그들도 제풀에 신이 나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나풀거렸다.

 나는 지금도 세탁물에 신경을 쓴다. 세탁기에서 돌돌 뭉친 것을 꺼내 모양새를 잡아 자근자근 밟아주고, 꼬깃꼬깃한 것은 애벌 손다리미로 갈무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삶에 지친 남편에게 기를 불어넣듯 셔츠의 깃을 세워주고, 딸아이가 늘 웃고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옷 주름을 펴는 데 공을 들인다.

 풋풋하던 시절에는 젊다는 것만으로도 풀기 빳빳이 세우며 살았다.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처지고 후줄근해진 요즘, 빨래를 널고 나면 유독 내 티셔츠가 낡아 보이고 왠지 한쪽으로 기운 느낌이다. 비뚜름히 걸린 모양새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일. 한쪽으로 틀어진 마음 꼭지를 바로잡을 일이다.

 베란다 가득 빨래를 널어놓고 차 한 잔을 만들어 햇살 앞에 앉는다. 빨래를 넣어 말리듯 내 마음도 탁탁 털어 햇빛 속에 내건다. 맺힌 응어리 풀어지고 뭔지 모를 헛헛함도 날아가라 기지개를 켠다. 갓마른 새물내로 내 마음 가슬가슬해질 걸 생각하니 한결 가뿐하다.

 

                                                                                 꿈꾸는 다락방 / 왕린

 

  비가 내린다. 장대비가 내린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꺾어지고 말 것을 어쩌자고 저리 내리꽂기만 하는 걸까.

 꽤 오래전이었다. 서울이 잠겨버리면 어쩌나 싶게 이틀 밤낮 달구비가 쏟아졌다. 산동네 사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저지대 사는 친구네가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물을 퍼내고 있다고 했다. 비가 잦아들기 기다렸다가 집을 나섰다. 그녀의 집은 흙탕물에서 건져낸 옷처럼 수마水磨가 훑고간 흔적이 역력했다.

 친구는 자기 집에서 유일하게 비에 젖지 않은 곳이라며 나를 데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창을 통해 흐릿하게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도 어두침침했다. 스위치를 올리자 직사각형 공간이 한꺼번에 들어 올려진 듯 환해졌다. 알전구 하나가 그렇게 많은 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달이 걸리면 혼자 보기 아깝다고, 그녀가 자랑하던 창문은 겨우 수건 한 장 크기가 될까 말까 했다.

 두리번거릴 뿐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커다란 건전지를 등에 업은 카세트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난 여기가 좋아.”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끊기면 그녀는 염력을 불어넣듯 카세트를 꽉 쥐었다 놓았다. 신기하게도 다시 음악이 이어졌다. 우리는 개어 놓은 이부자리에 나란히 기대 빗물에 얼룩진 창을 바라보고 앉았다.

 카세트에서는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건반악기 소리가 흘러나오고, 머리 위에서는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간헐적으로 밀고 당기는 선율과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친구는 지난밤 이 다락방까지 잠겨버리면 어쩌나 뜬눈으로 새웠다고 했다.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으려고 테이프를 찾았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흐르고 있는 곡이 꼭 빗소리처럼 들렸다. 비 같은 음악 소리, 음악 같은 빗소리. 테이프가 다 돌아가기도 전에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나는 행여 그녀가 깰세라 꼼짝하지 않고 앉아 물기 번져 전해진 백지의 꽃무늬를 세고 또 세었다.

 그 후 다락은 우리 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거기에 있으면 우리는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되기도,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현실감 없는 이야기도 무지갯빛으로 피어났다. 상상은 지지부진 전 날의 수위를 넘진 못했지만, 훗날 우리가 쓸 소설 속에서 정염을 태울 것이라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젊음이 무기이던 시절, 우리는 공부한다고, 비가 온다고, 눈이 내린다고 갖가지 이유를 대며 그 다락방을 오르내렸다.

 참빗처럼 촘촘한 가랑비가 오던 날, 우리는 창에 바짝 얼굴을 대고 엎드려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기설기 잇댄 슬레이트 지붕과 녹슨 영철지붕이 비에 젖어 우리처럼 납작 옆드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대로 붙박이가 되어버릴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구경삼아 내려다봤을 뿐인데, 골목 끝에 비를 맞으며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몇 세대가 변소 하나를 함께 쓰고, 길갓집 현관에는 해진 신발들이 키 재기를 하는 곳. 삶의 허기를 채우듯 동물 모양 완구에 눈을 붙이고 인형 배에 헝겊 조각을 채워 넣느라 어두워질 때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가난이 더께처럼 붙어 있는 그 골목은 부정할 수 없는 나의 현실이었다.

 우리는 다락방에 붙어 지내면서도 인생의 황금기, 젊음을 실속 없이 소진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 불안은 우울을 동반했고, 우울은 감성이 충만한 사람이 거쳐야 하는 동과의례일 뿐이라고 눙치던 두 청춘은 김수영에 베토벤에 그리고 커피에 빠져 지냈다.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미래의 준비를 갇힌 공산에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관념어만으로 도배되어 일기장이 채워지고 그것을 낭만이라 여기는 치기가 그 시절을 견디게 했다. 다락방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다락방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경쟁하듯 친구는 미국계 회사에 취직했다. 더불어 주머니 사정도 좋아져 그동안 가난했던 자신에게 보상이라도 해 주듯 시즌 티켓을 끊어가며 연극에 심취했고, 유명 화가들의 대표작 선집과 클래식 명반을 사서 모았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자 결혼 같은 건 하지 말자던 약속을 언제 했냐 싶게 결혼도 했다.

 딸 하나씩을 낳아 그 애들은 우리가 다락을 오르내릴 때의 나이를 훨씬 넘겼다. 가족처럼 느껴지던 골목길 꼬맹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래전 꿈속처럼 가물가물해질 만큼 긴 시간을 건너왔다. 삶에 발뒤꿈치를 물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달리는 사이 그 시절은 아득한 과거로 밀려나 있었다.

 뉴스에서는 호우로 하천이 범람해 도로가 침수되고 수재민이 생겼다고 한다. 생활환경이 좋아졌다 해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퍼붓는 비를 보고 있다니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다락방에서 듣던 음악, 빗소리 같은 음악이 다시 듣고 싶다.

 ‘토카타와 푸가’를 듣는다. 가난도,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도 지울 수 있었던 다락방에서의 꿈이 사라진 탓일까, 삶에 찌든 탓일까, 아니면 꿈을 꾸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그때의 그 절절함이 없다. 꿈꾸던 다락방에서의 기억들이 그리움이 되어 빗물로 넘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