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무덤 / 최 민 자
시계 무덤 / 최 민 자
무덤이라도 만들어 주어야겠다.
잠들어버린 시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라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조침문을 지어 부러진 바늘을 애도했던 옛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렁저렁 25년을 함께 한 시계였다. 조짐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관장하는 기계도 시간의 위력은 어쩔 수 없었던지 걸음이 점차 굼떠지더니 안 하던 태업을 하기도 했다. 가죽 줄이 낡아 몇 번인가 새 줄로 갈아 끼우고 전지를 교환해 넣기도 했지만 이번 참사는 예상치 못했다. 택시 안에서 시간을 고치려다 헐거워진 태엽이 빠져 좌석 아래로 굴러가 버렸는데 수수알 만큼이나 작은 그것이 종적 없이 숨어버려 내릴 때까지 찾지를 못한 것이다. 총상을 입은 듯 헹뎅그렁하게 뚫려버린 옆구리에 아쉬움보다 미안함이 더 크다. 훼손된 시신을 염도 못 하고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죽은 시계를 멍하니 내려다본다.
시계는 내게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고인 물 같은 내 시간들을 바깥으로 방출해 내는 장치 같은 거였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칼을 챙기듯 외출할 때마다 시계를 챙겼다. 손목 위에 시계가 얹혀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허둥대곤 했다. 다른 차를 아무리 마셔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고 안절부절못하듯이 시계라는 '부적'을 장착하지 않고는 현관 밖으로 나서지지가 않았다.
서랍장 안에는 이보다 비싼 시계가 몇 개 더 있기는 하다. 출가한 딸애가 남기고 간 것도 있고 기념일에 선물로 받은 것들도 있다. 그러데도 유독 이 하나만 편애했다. 연한 베이지색 스티치가 위아래로 가늘게 박힌 갈색 가죽 줄이 금장을 두른 얼굴과 어울려, 티 안 나는 고급스러움으로 내 취향을 저격했다. 다른 것들은 졸지에 찬밥신세였다. 사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면 질투심 때문에 다들 폭발해 버렸거나 자존심이 상해 가출해 버렸을 것이다. 외모도 스펙도 가문도 밀리지 않는데 같은 침상에 나란히 누워 간택을 받지 못하니 무심한 척 재깍거리면서도 속으론 얼마나 부글거렸을까.
만물이 다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은 일단 어디엔가 소용이 닿아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존재의 목적과 이유가 쓸모인 만큼 효용이 다하면 버려져도 그만이다. 그렇다 하여도 인간들은 너무나 쉽게 버린다. 쓸모가 다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배신을 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였던 시대에서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인 시대로 바뀌어버린 까닭에, 멀쩡한 휴대폰도 새 버전이 출시되면 미련 없이 팽개쳐진다. 모르고 살 땐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몇 가지 기능들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 되어 이전 것들을 퇴물로 만들어버린다. 쓸모에 앞서 아름다움 자체가 효용인 것들은 '싫증'이나 '변심' 같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더 쉽게 버림을 받는다.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만남과 헤어짐, 살고 죽음이 다반사여서 장례식장에서조차 슬픔의 향기가 묻어나지 않는다. 멀건 육개장 한 대접에 식은 전 접시앞에 두고 술잔 몇 순배 주고받는 의례로 애도의 예는 건조하게 갈음된다. 만사가 흐름이고 스침일 뿐이라면, 함께 나눈 시간들, 주고받은 인연들이 그렇듯 하찮고 시시한 것이라면 사는 일의 소중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디에 묻어 주어야 하나. 뜰도 마당도 없는 공중살이라 오후 내내 머릿속이 공회전을 한다. 자주 걷는 한강 산책길이나 앞산 어디 큰 나무 밑에라도…. 이쪽저쪽 깜빡이를 넣어 보지만 냉큼 시동이 걸리진 않는다. 일생 내 팔에 살을 대고 살았으니 그 또한 내 냄새가 그리울 것이다. 내쳐 두었다가 주인과 함께 묻히는 것이 최상의 대접이 될 듯은 하지만 매장埋葬보다 화장火葬이 보편화된 세상이니 그 또한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 끝에 바깥 베란다 배롱나무 큰 화분 밑에 일단 안장해주기로 했다. 멈추어버린 시계를 묻는다고 시간이 멈추지는 않을 테지만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동안 나무 아래 혼곤히 잠들어 있을 그에, 그와 함께 순장殉葬된 내 젊은 날들에 마음은 자주 거슬러 오를 것이다.
한지에 곱게 싼 시계를 백자 접시에 올려두고 해토머리의 참흙을 한 삽 한 삽 떠낸다. 작은 돌멩이를 골라내고 뿌리가 상하지 않을 깊이로 길고 깊게 파 들어간다. 시간을 놓아버린 시계가 시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기를 기도하며 시계를 눕히고 상토를 덮는다. 잠이 깊어지고 꿈조차 몽롱해져 다시는 시간에 붙들리지 않기를 가만가만 한 손길로 빌어보지만 어느 날 문득 새끼 개미 몇 마리라도 화분 흙 사이로 알짱거리면 나는 그게 시계의 혼이라고, 시계 속에 갇힌 시간의 입자들이 생명을 얻어 부활하는 거라고, 부득부득 우기게 될지 모르겠다. 붉은 울음 멍울멍울한 배롱나무 꽃가지가 바람에 가만히 흔들거리면 흘러버린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을 헤아려보며 멍 때리는 일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