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매수필

부서진 날갯짓 / 정 복 언

장대명화 2020. 12. 18. 23:44

                                  부서진 날갯짓 / 정 복 언

 

  겨울 초입의 어느 아침이었다. 잔디마당에서 여린 햇볕을 쬐며 무심히 거닐다 허공으로 시선이 쏠렸다. 거미 한 마리가 소나무와 매실나무 사이에서 열심히 투망하고 있지 않은가. 촘촘한 거미줄에는 생과 사의 시간이 펼쳐지는 듯했다.

  거미는 한쪽에 비켜 앉아 먹잇감이 걸려드는 순간에 포박하려고 매섭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미줄 곳곳에 까만 점 같은 것들이 수도 없이 매달려 있었다. 작은 개미보다 더 작은 것들이어서 내 시력으로는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까 호기심이 일었다.

  왼손 검지로 거미줄을 당기니 서너 개의 흑점이 함께 딸려 나왔다. 서재로 들어가 필통 속에서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햇살이 비추는 방향으로 시력을 한껏 부풀렸더니, 엄연한 생명체가 보였다. 작디작은 몸체 양옆으로 투명한 날개가 달려 있고 다리도 세 개씩 짝을 이뤄 붙어 있었다. 개중에 한 녀석은 거미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손가락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게 아닌가.

  이름도 알 수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들의 날갯짓으로 이는 회오리를 상상해 보았다. 자기 몸체보다 수백 배나 높이 날아올라서 짝을 찾으며 군무를 펼치는 공동체의 운명 같은 것, 차라리 하루를 살더라도 여한 없이 사는 차원이 높은 종처럼 생각되었다. 인간이 어찌 다른 생명체의 마음을 다 읽어 내랴만.

  거미는 한 입 거리도 아니라며 날것들을 그대로 놔둔 모양이다. 누구에게는 매우 사소한 일이 또 누구에게는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바람의 부력을헤아려 본다. 작은 날개라고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