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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逸民 / 황 옥 주

장대명화 2020. 11. 12. 07:22

                                                                일민逸民 / 황 옥 주

 

  숫저운 사람의 매력은 아는 것도 ‘아는 체’ 하지 않는 겸손에 있다. 반대로 요설을 휘두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없는 박사연(博士然) 설친다. ‘안다’ ‘모른다’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체’하다가 긁힌 생채기는 오래가도 남는다.

  무등산 천제단에서 새인봉이 건너다보이는 남쪽 길로 조금 내려오면 고총이 하나 있다. 빠지지 않고 벌초를 한 걸로 보아 관리자가 있음은 분명한데 넘어질 듯 삐뚤어진 비석은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다. 위탁 관리인지, 집안 후손이 관리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공연히 불안하다. 넘어진들 나더러 세워라 할 것도 아닌데 걱정도 팔자다.

  비석에는 큼직한 글씨로 ‘朝鮮逸民○○○之墓’라 새겨져 있다. 멋진 예서체다. 식견 없는 내가 봐도 그럴싸하다. 이런 글씨면 그 시절 이름 있는 서도가의 손을 빌렸을 것인즉 가문도 재력도 어지간했을 것이다.

  퇴직을 앞두고 친구들과 무등산을 산행하면서 처음으로 그 비문을 읽어봤다. 천제단 길, 전에도 자주 다녔지만 그때는 빨리 걷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여기던 터라 앞사람을 추월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산행할 때는 행선지에 따라 거의 쉼터가 정해져 있다. 천제단도 그중 하나다. 그날은 등산객이 많아 고총에서 쉬었다. 심심풀이로 비문을 읽던 친구가 “일민이 무슨 뜻인지?” 물을 때 “글쎄?”가 좋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건성으로 대뜸 “호이겠지” 해버렸다. 친구는, 글 쓴다는 사람이 설마 그것도 모르랴 싶었던지 나의 유식(?)한 답을 믿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간간히 그 앞을 지나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일민이 호라면 앞의 조선이란 국호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조선 땅의 누구라? 나라이름까지 들먹이며 호를 지은 사람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한 번 의심이 생기면 귀신이 떨어지지 않는다. 의심암귀다. 찾아보리라 했다가도 몸을 씻고 나면 비문의 일랑은 깡그리 잊어버리곤 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사전을 펼쳐봤다.

  “학문과 덕행이 있으면서도 세상에 나서지 아니하고 묻혀 지내는 사람”이라 풀이되어 있었다. ‘무식한 귀신은 부작(符作)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마치 나를 경계한 말처럼 되어버렸다. 얼마나 생각 없고 경솔한 사람이었는지 혼자 찾아봤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만약 다른 사람의 물음이었더라면 나의 무식함을 얼마나 비웃었을까? 등에 땀이 서렸다.

  공자님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진짜로 아는 것’이라 했다. 난 절대로 아는 체하고자 한 말은 아니었으나 무심결의 대답이 결과적으로 그리 되어버렸다.

  실수는 이렇게 경솔과 오만 때문에 생긴다. 나만 책 읽고 사는 것은 아닌데 40년의 교육자 생활이 몸에 밴 은연중의 자만이었다. 내가 불목하니보다 못하랴싶은 건방…. 나중에 밝히긴 했지만 꼭 도둑질하다 들켜버린 심정이었다.

  실은, ‘일민’이라는 어휘는 신문이나 책에 자주 나온 말이 아니다. 많이 안 쓴 어휘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머릿속에 박힌다. 모른다가 조금도 흠이 아닌데 ‘아는 체’로 당한 망신이라니! 잘못된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잘못된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공자님의 말씀을 자주 인용한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대역된 논어해설집을 펼쳐본다. 때문에 완전한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곧잘 잊어버리기 일쑤다. ‘일민’이란 풀이가 논어에 나와 있음을 나중에 읽어보고 크게 후회했다.

  공자님은 미자(微子)편에 백이숙제 등 일곱 분의 일민을 언급하셨다. 에멜무지로, 논어의 해설서라도 더 자주 읽어두었더라면 늙마에 단어 하나로 무식을 들킬 일도 없었을 것을…. 남모르게, 구메구메, 연모를 갈아 놓아야 솜씨 좋은 목수란 말을 듣는다. 진리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 곁들어 있음을 모른 잘못은 오로지 내 탓이다.

  내친 김에 해설서를 더 읽어봤다. 주자는, “逸(佚)은 망해 없어진 나라의 백성, 民은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을 칭 한다”는 풀이도 있다. 한마디로 절행이 초범(超凡)한 사람으로 학식을 갖추고도 벼슬을 멀리한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일민이란 말은 아무나 쓸 수 없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라 생각했다. 계유정난 시 초연히 세상을 등지고 한사(寒士)로 살았던 생육신 같은 분에게 딱 어울릴 말이다.

  관심과 의욕만 있다면 사방에 배울 것 천지다. 눈을 뜨고 보면 비석도 공부감이요, 속눈이 닫혀있으면 그저 돌일 뿐이다. 백비(白碑)도 책이며 스승이다. 배울 것 많은 세상에 아는 체하다 당하는 망신보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은 용기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면 다시 익히고 또 잊어버려도 상관없다. 모르면서도 배우지 않으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그 고총의 비문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도 ‘일민’의 뜻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逸民’이란 한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며 처신사납게 목을 젖히지 않았을까?

  사람은, 언제 어디 누구 앞에서나 ‘아는 체’를 경계하며 살 일이다. 아무리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사이라 할지라도….

 

*숫접다 ㅡ 순박하고 진실하여 수줍어 하는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