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줄을 걸다 / 피 귀 자
허공에 줄을 걸다 /피 귀 자
두툼한 발바닥이 줄을 요리한다. 흰 양말 속의 발가락이 움찔움찔,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질 듯 가까운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어찌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까. 외나무다리를 건너도 다리가 오그라드는데 족히 삼 미터는 됨직한 장대에 걸린 줄을 타는 그의 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무형문화재 58호 김대균 씨가 강릉 허공에 줄을 걸었다. 빨랫줄보다는 굵다 하나 한 줄 둥근 외줄이 아닌가. 까딱 한번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추락하여 큰 부상을 입을 것은 자명한 일. 이쪽저쪽 어느 쪽으로도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기 위한 팔놀림은 나비의 날갯짓 같고 한발 한발 내딛는 그의 발걸음에 수많은 사람이 숨을 죽이고 쳐다본다. 조금만 줄이 흔들려도 긴장감은 고조되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줄타기 명장인 그가 줄에 올라서기 전 경건하게 제례를 올린 이유를 알 것 같다. 매인 줄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어린아이를 불러내어 술을 붓게 하고 절을 올린 후, 그 술로 줄을 맨 장대 곳곳에 정성스레 부을 때는, 다소 낯설고 의도 된 듯하여 지루하다고 느꼈었는데 금세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바라보는 이도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것을. 줄 위를 한발 한발 얌전히 걷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질 듯하다가 다시 공중으로 공이 튀어 오르듯 펄쩍 뛰어오른다.
“악”
마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튀어 오른 몸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찰나 터져 나온 비명이었으나, 그는 두 다리를 벌리고 시소를 타듯 줄 위에 내려앉았다. 줄 하나만을 의지하여 가볍지 않아 보이는 몸이 털썩 내려앉았으니 얼마나 아플 것인가. 중간동네가 고장 났다고 그가 너스레를 떤다.
아니, 너스레가 아니다. 삼십 년 넘는 세월, 뼈를 깎는 훈련의 과정 중 피딱지가 앉고 고름이 끼면서 살이 무디어진 결과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일을 완수한 자만이 누리는 행복,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걷고 뛴다. 양반다리를 하다가 손 한번 쓰지 않고 한쪽으로 걸터앉다가 자석에 철가루 붙듯 무릎을 꿇기도 한다. 편안한 안방이 따로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줄 위에 바쳤을까. 줄 위의 거리를 여행한 발자국마다 어찌 사연이 없었을까. 외줄을 타는 일만큼 외로운 일도 없으리라. 한발씩 그 줄 끝까지 다다르기 위해 두려움을 참고 고뇌하며 밀려오는 고통을 승화시켰기에 고수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쪽은 낭떠러지요, 저쪽도 낭, 좌우가 낭인데 가진 것 없고 머리에 쓴 것은 초립밖에 없것다. 줄만 잘 타면 성공할 수 있다 하여 아홉 살에 줄에 올라 삼십 년 넘게 줄을 탔지만 별 볼 일 없고, 매번 엉덩이만 터지고 줄광대라고 손가락질만 하고. 좋은 것이 딱 하나 있는데 여기 있는 여러분들이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오”
재담을 섞은 그의 노랫말이 구수하다.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가졌던 것일까. 그는 줄을 타기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줄 위에서 할 정도로 온 정성을 바쳤다고 한다. 무엇엔가 미친 사람만이 길을 낼 수 있다. 가슴에 이는 불은 아무도 끌 수 없다. 이 길밖에 길이 없다고 믿으며 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맥이 끊이지 않고 우리 얼이 계승되고 있음이 아닌가. 무엇이 되고자 하면 그것을 먼저 자신에게 말하고 해야 할 일을 향하여 도전을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로마의 철학자 에픽 테토스의 말이 생각난다.
발바닥이 입이라고, 목마르면 물을 들이켜듯이 물기가 없으면 줄타기도 어렵다며 투박한 손에 물을 묻혀 두툼한 면양말 바닥을 축이고 그가 또다시 사뿐 줄 위로 오른다. 그의 발은 보통 사람보다 좀 더 넓어 보인다. 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 영역을 넓혀나간 건 아닐는지. 환경에 적응해가는 발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줄타기는 허공 위에서 보여주는 기기묘묘한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삼현육각 반주에 맞추어 춤추고 소리하며, 추임새를 넣는 땅 위의 어릿광대와 호흡을 맞추어 주거니 받거니 재담도 하는 종합예술이다. 줄을 타는 곳의 정서와 음악과 호흡까지 맞춰야 하며, 재담의 내용도 공연하는 장소와 관중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줄을 타는 모습에 집중하는 관중들 속에 네댓 살 아기들의 모습은 전깃줄에 앉은 제비새끼 같았다. 한창 고물거릴 나이지만 줄지어진 의자 앞 땅바닥에 조르르 앉아 고개를 뒤로 발딱 젖힌 채 집중하는 귀여운 모양에 우리 삼총사도 한마디씩 입을 보탰다.
인간문화재가 대접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그의 어깨 위에서 햇살이 눈부시게 미끄러진다. 허공과 땅 사이에 가로 놓인 줄은 남녀노소를 하나 되게 하는 소통의 도구였다. 팽팽한 외줄 위에서 공중잡이 하는 모습이 오래 잔영으로 남을 것 같다. 허공에 줄 하나 걸어놓고 생각의 묘기를 부리는 일이 잦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