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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 / 염 정 임

장대명화 2020. 9. 17. 06:18

                                               거울 속의 거울 / 염 정 임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art)의 <거울 속의 거울>이란 음악을 듣고 있다. 피아노의 명징한 음과 첼로의 중후한 음향이 단조로우면서도 명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마치 영원히 계속 될 것처럼.

 

 거울에는 광물성에서 느낄 수 있는 차가움과 깨어지기 쉬운 연약함이 있다. 마치 우리 귀에 닿았다 사라져 버리는 음향과도 같이 거울 속의 형상은 만질 수가 없다.

 

  거울 속의 세계는 꿈속 같기도 하고 끝이 없는 심연 같기도 하다. 거울 속의 거울이 빚어내는 수많은 이미지도 순간적인 허상일 뿐이다. 거울 속의 나는 실제의 내 모습이 아니다. 삼면으로 된 거울 앞에서 한쪽 모습을 보게 된다. 나 같기도 하지만, 어딘가 나와는 다른 이상한 얼굴, 거울 속의 내 얼굴에는 나의 어머니도 있고, 나의 할머니의 얼굴도 엿보인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외출할 때에는 단장을 하지만 오늘의 내 얼굴은 어제의 내 얼굴이 아니다. 밤새 미세한 주름살도 생기고 잡티도 생겼을 것이다. 아마 사람들의 시선에 닿은 얼굴이 나의 참얼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참얼굴을 모른 채 살다 간다.

 

  거울은 삶의 미로를 상징하기도 하고, 현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를 상징하기도 한다. 시인에게 거울은 자의식이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여주는 성찰의 도구였다. 윤동주에게는 우물이 거울이었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방에 거울을 비춤으로써 메두사를 물리쳤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큰 거울을 비치며 그의 죄를 찾아낸다고 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니?"

 

 신화나, 동화 속의 거울은 심판자이며 초능력자이기도 하다.

 

 보르헤스의 책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거울 속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지금처럼 단절되어 있지 않고 서로 왕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거울 속의 사람들이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평화가 깨어졌다. 그래서 황제는 침략자들을 몰아내 거울 속에 가두고 그들을 인간과 사물에 종속된 단순한 그림자로 만들어버렸다. 지금도 거울 속의 존재들은 언젠가 이 신비한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거울 속 존재들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르사유궁전에는 사방이 거울로 된 방이 있다. 환락과 욕망이 넘치던 곳의 종말에는 인간의 증오와 잔악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두둥실 10월 상달의 둥근 거울이 잠든 세상을 비추고 있다. 우리가 마주 보는 모든 것은 거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울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