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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빛깔/ 조재은

장대명화 2020. 5. 14. 00:52

                                          삶의 빛깔/ 조재은

 

  한 사람이 생을 끝마치고 마지막 길을 떠날 때, 그동안 산 흔적에 따라 작고 큰 소요가 일곤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장례식에는 형식적인 애도의 소리가 높고 주위를 보살피며 따뜻하고 환한 빛을 주고 간 사람의 장례식은 보내는 아픔이 짙게 깔려있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의 궤적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주검의 소멸(燒滅)이 있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옛 바이킹들은 죽으면 시신을 작은 배에 실어 노을이 질 무렵 바다로 떠나보낸다. 죽은 이를 아끼던 사람들은 배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마지막 이별을 할 즈음, 화살에 불을 붙여 배를 향해 쏜다. 불화살이 배에 맞아 시신과 함께 타기 시작할 때, 불의 빛깔이 그날의 붉은 노을과 비슷할수록 죽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보람차게 살았다고 판단한다. 떠나보내는 사람은 불빛과 노을빛이 일치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주검이 하늘과 화합하여 바다로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영화 로켓 지브롤터에 나오는 낭만적인 장례식을 보고 바다의 노을이 보고 싶었다. 바다가 도착한 그날의 노을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보여 줄 것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혔다. 그 즈음 나의 삶은 의문부호의 연속이었고, 그 답에 마주서야 했다.

 노을이 아름다운 안면도로 갔다. 사진에서 본 안면도의 석양은 바다와 하늘이 얼싸 안은 채, 영영 꺼지지 않을 불처럼 활활 타고 있었다. 바다가 가까워지고 일몰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됐다. 바다와 해는 내게 어떤 색을 보여주고 내 삶의 답안지를 보여 줄까.

 궁금했던 내 삶의 평가지에 찬란한 색의 스펙트럼은 없었다. 저무는 해는 하늘과 바다에 무채색만을 흩뿌렸다. 회색빛 하늘 구름 뒤에 엷은 분홍빛이 잠시 보였을 뿐, 사진에서 본 황홀한 일몰은 어디에도 없었다. 초라한 삶의 흔적이었다. 하루를 더 기다렸다. 색의 멸절이 아닌, 빛의 명멸을 기다렸다. 다음날도 하늘은 아무 무늬도 그리지 않았다. 일몰의 서해에서 내 삶의 빛깔을 보았다. 기대와 착각의 환영(幻影)은 참담했다

 돌아오는 길, 안면도에서 본 모습 하나가 떠올랐다. 물이 빠져나간 새벽바다에서 갯바위에 붙어 있는 석화를 따는 여인이었다. 찬바람을 수건 한 장으로 가리고 해풍에 시달린 거칠고 두꺼운 손으로 구부리고 앉아 석화를 따고 있었다. 석화 또한 그 여인의 삶처럼 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바위에 달라붙어 있다. 석화는 갈퀴에서 떨어져 나온 후에도 거친 껍질에 연한 살을 숨기며 생을 버티었다.

 언 손으로 딴 석화는 그릇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어갔다. 한 그릇을 채워 팔기 위해 얼마 동안이나 소금물 속에서 젖은 손을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 생존을 위해 몇 십 년을 그렇게 버티어 왔을까. 주어진 삶을 묵묵히 버티어온 어촌 아낙의 해풍에 갈라지고 햇볕에 그은 얼굴.

 어떻게 살았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쉼 없이 움직이는 운명에 순종하는 손이, 순간의 찬란한 일몰의 색조보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