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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돌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자리표ㅡ우광미

장대명화 2020. 4. 15. 06:44

                 

                             댓돌 /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자리표ㅡ우광미

 

  그곳은 성전의 들머리다. 저마다 순례길 같은 일상에서 지고 온 남루들을 벗어놓는다. 하루치의 자잘한 삶의 편린들을 정화시킨 후 비로소 맨발을 방으로 들인다. 또 날이 새면 어김없이 새로운 다짐을 찍으면서 나선다.

  ​  돌은 연장이 되기도 하고 염원을 담아 얹으면 탑이 되기도 한다. 성벽의 돌처럼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높이 쌓은 것도 있고, 보일듯 말듯 나지막이 집 담장으로 둘러진 경우도 있다. 그 쓰임새가 다양하나, 집채를 오르내리도록 만든 계단인 댓돌은 유난히 살갑다.

​  비상하는 새들도 머무르며 쉼표를 찍듯이, 생각이 흐트러질 때엔 시골집에 와서 댓돌을 바라본다. 칼에 베인 시간처럼 빈집의 공허가 창백하다. 내 시간의 긴 침도 모 닳은 댓돌 위에 멈춰 있다. 각이 서 매사 반듯하던 젊은 날의 성정도 유연해졌는지 제 몸에 이끼꽃을 피웠다. 바닥의 애환을 알고 있는 듯 묵묵히 세월을 받아낸 낙수의 결마저 간직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요에 든다. 이렇듯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멈추어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해가 설핏해지자 산 그림자가 마당에 내려앉는다. 감나무 끝에 서성이던 바람이 댓돌 위로 먼 기억의 풍경들을 부려놓고 간다. 우듬지 까치 소리가 여명을 깨울 때부터 들리던 자분자분한 어머니 발걸음 소리. 뻐꾸기 울고 스무날만 지나면 풋보리를 먹을 수 있다던 외할머니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난다던 어머니.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했다던 그 말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주문인 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겨운 시집살이에 속울음을 삼키며 친정으로 향하고픈 발걸음을 몇 번이나 여기서 바장였을까. “이별이 꼭 죽음뿐이랴.” 하시며, 집 나간 자식 흉몽이라도 꾸는 날이면 하얀 소금을 한 줌 댓돌 주변으로 뿌려 놓으시곤 했다. 아랫목 이불 속에 밥그릇이 따뜻하면 객지에서도 배곯지 않는다는 믿음, 신발이 가지런하면 어디를 가든 발걸음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어머니 불변의 동종주술이었다.

 

​  하루의 일과 중 무시로 눈보다 정갈히 씻은 시어른 고무신을 섬돌에 올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었다. 가족의 밥이 되고 자식의 책이 될 벼를 돌보기 위해 산모롱이 돌아 물꼬 트는 아버지의 흙고무신. 안쪽 바닥에 우산대 달궈서 눌러놓은 낙인은 끝까지 닳지 않는 바코드였다. 덤벙대며 마루로 뛰어오르곤 하던 오빠의 운동화는 사선으로 놓이거나 한쪽이 뒤집히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히 챙겨놓았다. 마치 댓돌이 나의 영역이라고 무언의 주장이라도 하듯이. 어떤 허물도 절대 발설치 않는, 주소를 잡고 떠날 줄 모르는 정착의 의지가 굳건하다.

​  옆구리 맞대고 길게 늘어섰던 신발들. 그런 댓돌이 휑하니 비는 밤이 한 해에 꼭 하루씩 있었다. 음력 정초가 되면 날마다 무슨 금기가 그리도 많았던지. 그 중 신일(申日)에는 밤중에 귀신이 와서 신발을 하나씩 신어 보고, 그 중 딱 맞는 신 임자는 그 해에 병치레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초저녁이 되면 방 윗목에 신문지를 깔고 온가족의 신발을 나란히 늘여 세웠다. 늘 보던 신발을 방안에서 보면 색다르게 보였다. 아침에 나와서 말끔히 비어 있는 댓돌을 볼 땐 마치 새집에 온 듯이 낯설었다. 그만큼 댓돌은 신발이 놓여야 생명을 가지는 공간이다.

​  큰 건물의 댓돌은 마당에서 기단으로 오르는 계단이기도 하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 주는 디딤돌이다. 불국사의 연화교에 디딤돌마다 연꽃이 새겨진 이유도 그 위가 부처의 세계라는 암시이다. 진흙에 뿌리를 내린 채 티없이 향기를 피우고, 물 위에 잎을 펼치고도 젖지 않는 연화처럼 청정한 세계로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대궐의 조계(階)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용이 통치자의 권위를 내보이기도 하지만 구름을 몰고 다니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하니,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우로(雨露)를 골고루 내려 풍족하게 한다는 다짐일 터이다.

​  그에 반해 속계에 사는 서민의 집 댓돌은 조붓하다. 장식이 없고 밋밋하다. 화장기 없고 수수한 시골 아낙과 같다. 비록 열반을 향해 오르는 연꽃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용 문양의 돌은 아닐지라도 댓돌의 적요는 본성이 지닌 포용력에 있다. 울타리 허술하게 치고 사는 서민들 정 붙이고 살아가는 속내야 어찌 연화장 세계나 대궐보다 덜하겠는가.

​  유년시절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두 장의 흑백 필름이 있다. 팔남매의 막내인 나에게 기억될 정도면 할아버지는 수를 하신 셈이다. 한 장은 누워 계신 모습이다. 이불을 잔뜩 당겨 덮은 까닭에 얼굴만 드러났다. 얼굴보다는 숱 많은 수염과 한 번도 벗지 않던 탕건만 기억난다. 또 한 장은 댓돌에 앉은 모습이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리에 행전을 두른 채, 마루를 배경으로 댓돌 위에 앉아 계셨다. 그분에게 댓돌은 일생 다스려온 영토를 내려다보는 성루이자, 피안을 바라보는 차안의 나루터였을지도 모른다.​

 

  댓돌은 밤이 되면 도량의 정례석처럼 정(靜)하다. 하루를 돌아보고 나쁜 기운은 별빛에 우려낸다. 고된 노동 후에 밥은 달고 잠은 깊은 법. 깊은 잠 속에서도 생의 무게에 신음하는 부모님의 숨소리마저 거두어 달빛에 씻어내는 정화수 막사발이다. 어제의 삶에 오욕이 달라붙었을지라도, 뉘우침으로 밤이 길었을지라도, 아침이 되어 신발을 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부여해준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댓돌 위에는 지난 삶이 남아 있다. 돌아봄과 되새김의 시간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하루의 노동을 끝낸 달뜬 걸음이든, 일용할 양식에 매인 비루한 걸음이든, 끝내는 댓돌에 닿아서 멎는다. 내려간 만큼 삶을 절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바닥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낮은 자세로 좌정하고 있다. 가족들 차례로 떠나고 종내에는 어머니 혼자 오르내려도, 생각 속 신발만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던 댓돌이다. 이제 어머니의 신발도 정물이 되었다. 걷고 걷다 온 제자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날들이 채도를 잃은 가족들의 신발과 함께 저기 놓여 있다.​

  이 모든 희로애락을 듣고 갈무리한 댓돌에 앉아 지난 세월을 되작여 본다. 걸을 때에는 나아가는 일에만 전념했다. 바라보았던 건 앞쪽과 남은 거리뿐이었다. 멈추어 돌아본다. 인지한다는 것은 관찰하고 그 깊이를 가늠하는 일이다. 신발을 잘 벗어 놓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지금 여기’ 자신이 서 있는 마음자리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하심(下心)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  마음 허허로운 날엔 댓돌에 올라 볼 일이다. 우리의 뒷모습이 저기 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족들의 온기가 새겨져 있다. 시간을 거슬러 표정들이 살아나고, 귀 기울이면 속삭임이 들려온다. 모 닳은 댓돌은 우리집 호적등본이다. 칸이 부족해 너덜너덜한 우리 삶의 이야기가 깨알처럼 씌어 있다. 나 또한 언젠가는 하나의 정물로 들어앉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이건, 오늘도 이 제단을 조용히 쓸고 오른다.​​

                                                      자리표 / 우 광 미

 

 보이지 않는 소리에도 자리가 있다. 자리의 높고 낮음은 악보에도 나타난다. 높은음자리표의 음은 상향이고, 낮은음자리표의 음은 하향이다. 높은음자리표 안에 사는 음들은 우리 눈과 귀에 익숙하다. 평소 노래를 부르면서 보아왔기에 쉽게 읽힌다. 그에 반해 낮은음자리표 안에 사는 음들은 눈에 설다. 면밀히 층수를 헤아려 보아야 알 수 있다. 시작되는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이치에 비추어 보면 큰 것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음이 크고, 작은 것에 대한 만족도는 낮은 음이 더 크다. 높은음은 화려하게 상승하면서 돋보이기도 하고 우월감을 마음껏 발산하여 주위의 이목을 쉽게 끈다. 이에 비해 낮은음자리표에 사는 음에는 더는 내려갈 데가 없어 날선 감정의 열등의식이 잠재되어 있기도 하다. 이 잠재의식은 밖으로 분출하기도 하고, 더러는 더욱 낮은 곳으로 자신을 추락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서로를 배려하고 지금의 자리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그들 나름의 은유다.

 산다는 건 많은 변수를 수반한다. 때로는 높은음자리표를 보다 낮은음자리표를 봐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 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다시 의미를 찾아야 했고, 새로운 길을 가야만 했다. 의사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바이올린을 계속하기는 무리하고 했다. 바이올린은 높은음자리표를 연주한다. 현란한 테크닉과 하려함을 표현하기에는 찌를 듯한 높은음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정열을 쏟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쉽게 접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유로 첼로를 시작하게 되었다. 첼로는 저음 악기여서 낮은음자리표를 봐야한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낯설고 혼란스럽다. 손가락으로 찾는 음의 위치부터가 다르다. 활을 쥐는 힘의 조절 또한 그렇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바이올린의 높은음을 낼 때보다 첼로의 낮은음을 낼 때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만큼 오케스트라 안에서의 역할에도 부담이 덜 간다는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첼로는 주선율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

 첼로는 악기와 가슴이 맞닿는다. 하향하는 삶의 편린들이 겹겹이 굳어져서일까, 바이올린보다는 줄이 굵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라도 하듯 그 줄을 팽팽히 유지하고 있는 줄감개의 장력도 장년의 무게를 거뜬히 견뎌내고 있다. 활을 긋는 순간 가슴속 밑바닥 시간의 앙금을 긁어내는 낮은음에 온몸이 울린다. 나의 몸을 울린 음은 세상을 향해 낮고 길게 퍼져 나간다. 낮다는 건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제 생의 깊이를 더 삭혀 내지 못한 울음들이 고여 있는 곳이다.

 불현듯 내 기억의 바닥 속에 있던 그가 떠오른다. 다섯 아들 끄트머리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막내 여동생에게 양보하는 데 익숙한 그였다. 어른이 되어 독립한 후에도 세상은 그를 주저앉혀 낮은음만을 읽도록 강요하였다. 늘 밑으로 향하는 음만을 읽어내던 그였다.

 건축가의 꿈을 접고 빌딩 숲속 로프에 매달려 반짝이는 도시의 간판을 달았다. 높은 빌딩이 그에게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였을 것이다.

 “태풍이 다녀가도 내가 건 것은 절대 날아가지 않아.”

절망의 농밀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자신의 꿈을 함께 걸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 일이라면 물먹은 솜 같은 몸일지라도 먼저 챙기는 그였다. 불편한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혼자 외로이 불 꺼진 네온처럼 지난 밤 데워진 감정을 곰삭혔을 것이다. 그 탓일까. 몸속에서는 암세포들이 자라고 있었다. 말기가 되어서야 주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두 해를 버텼다. 그런 동안에도 쓰러져가는 몸을 곧추세우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루치의 노동이 삶의 축복이고 가족의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해 겨울, 그는 나를 찾아왔다. 그땐 이미 곡기를 끊고 있었다. 일주일간 마련해 둔 숙소에서 깊은 침묵에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날 부탁할게라며 통장을 내밀었다. 그것의 의미를 짐작한다. 그 깊은 침묵이 내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뭐라 해야 할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진부한 말밖에 언어의 한계성을 넘어설 수 없는 가난함이 나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이 시대의 아버지라는 숙명을 짊어진 사람.

 그가 떠나고 다음 날 오전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벨이 울린 후에야 그가 받았다. 뭐든 좀 먹었느냐는 물음에,

 “그래 먹었어.”

 라고 대답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어제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그 음성엔 한없는 평온함이 있었고 따뜻함까지 풍겨 나왔다. 순간 한시름을 내려놓았다. 그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와 두어 시간이나 되었을까. 전화가 왔다.

 “고모, 아빠가.”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수록 어린 아들에게 닥쳐올 세상의 칼바람이 더욱 거칠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 한기를 알기에 삶의 차단기를 스스로 내렸다. 목숨마저 저당한 채 써놓은 낮은 이의 주관식 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의 바닥 속에 몸을 누이지 않는 한 알지 못할 것이다. 삶이 내게 던져준 또 하나의 물음표 같은 것일 뿐이다.

 장례식엔 가족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줄을 이었다. 수많은 친구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배웅했다. 낮은 자의 아픔을 보듬는 이는 가진 자가 아니고 그들의 아픔을 아는 이들이다. 그가 베푼 많은 사랑을 보고서야 알았다.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실패한 삶일지도 모른다. 난 그가 아름답게 살다 갔다는 사실에 충분히 공감했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가 묵었던 방에 그의 아들과 친구들이 다녀간다.

세상의 자리표는 우리의 겉모습이다. 고음으로 소리치는 자 누군가의 가슴을 찌를 때, 진정성 있는 낮은 소리는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 주고 삶의 깊이를 더한다. 모나게 혹은 부족하게 보이는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소리로 존재한다. 그 소중함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그들과 함께 내는 소리는 심장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따로 또 같이 오선지 안에서 공존하여야 한다.

 창밖은 흐린 날씨로 무채색이다. 악보를 펴고 첼로를 켠다. 낮은 기압으로 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멀리 퍼진다. 간간히 그의 얼굴이 악보와 오버랩 된다. 어느새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나의 소리는 그에게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