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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논하다 / 변 종 호

장대명화 2020. 3. 31. 05:39

                                          입을 논하다 / 변 종 호

 

 

 얼굴 맨 아랫자리지만 생의 통로이다. 타자와 가장 빠른 소통의 지름길이며 감정에따라 무시로 형상을 바꾼다. 가장 많은 업을 쌓는 입은 걸음마를 막 뗀 아이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

 

입술

들고나는 몸의 관문이다. 코가 무인 검문소라면 경비병을 갖춘 입술은 제법 가려서 통과시킨다. 죄지은 자도 입술의 협조 아래 묵비권이 가능하고 이성간교제도 입술이 포개져야 달아오른다. 하여, 애정표현도 명줄 유지에 필요한 음식도 입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며 몸 상태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입술이 파래지면 저체온이고 입술에 물집이 잡히면 고단하니 쉬라는 경고이다.

 

입술은 위아래로 구별되고 붉게 그어진 둘레에 따라 입의 크기를 가늠한다. 입술이 얇으면 입이 가볍다고 하며, 두꺼우면 입이 무겁다고 한다. 두꺼운 입술을 가진 사람이 가벼이 입을 놀리는 걸 본 적이 없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두꺼운 윗입술이 얇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는 형상이다. 가벼이 입술을 놀리기 어려운 모양새다. 그러니 말이 많을 리 없다. 숫제 입을 닫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런 연유로 때로는 도도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어머니를 닮았다.

 

이와잇몸齒齦

의 선공이다. 몸에서 나보다 더 야문 게 있으면 나오라며 내가 있어 그나마 잇몸이 보인다고 하고, 잇몸은 세상 구경 너보다 대여섯 달 먼저 했고 밑에서 꽉 잡고 있어 네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지만 다툼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막둥이처럼 이를 예뻐하고 잇몸은 늘 뒷전이다. 더러는 미용으로 원치原齒갈아내고 래미네이트로 씌우거나 임플란트로 고른 치열을 만들지만 시기 어린 잇몸은 짙은 보라색을 띠며 인공치라는 걸 알리는 내부자를 자임한다.

 

해가 갈수록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요인 중 하나가 의치와 임플란트 덕분이라 한다. 음식을 잘게 부수는 치아의 기능은 소화흡수에 기여하며 씹으며 느끼는 맛은 살아가야 할 가치를 높인다고 한다.

 

치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프면 용빼는 재주 없다. 앞에 놓인 모니터에는 소독된 기구만 쓴다고 나오지만, 입안에 고인 핏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입안을 넘나드는 석션호스가 영 마뜩잖다. 게다가 이를 갈 때는 온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시큰거리고 아픈 데다 앵앵거리는 소음 역시 싫다.

 

눈빛만 봐도 알아채고 호흡을 맞추는 사람을 입안의 혀 같다고 한다. 혀의 본질인 미각 감지와 음식을 씹고 넘기는 데 충실하며,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정확한 발음에 공을 세운다. 그뿐 아니라 이성간 급격히 몸이 달아오르면 상대의 신체를 공략하려고 선봉에 서기도 한다.

 

따뜻한 말로 용기를 주거나 기운을 돋우기도 하지만 내뱉는 험한 말은 칼보다 더 깊은 상처를 주고 때로는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우리 신체 중에서 손 다음으로 가장 못된 짓을 하는 게 겨우 십여 센티미터에 불과한 혀가 아닐까.

 

깜냥도 안 되면서 언행일치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지만 실행은 어려워 늘 입조심을 하며 살았다. 불가에서는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온다.’라고 법구경이 전하며 최고의 수행으로 묵언黙言을 손꼽는다.

 

몸 안팎을 들고나는 것을 통제하는 입이지만, 본능적 욕구에 매번 지고 만다. 입에 당기는 음식에 무너지고, 감정이 개입된 거친 말은 자업자득이 되어 돌아온다. 온화한 미소와 칭찬이 이상적이나 그 시간은 마냥 짧기만 하다. 수시로 돌변하는 입에서는 수많은 말을 자발 없이 쏟아낸다. ‘말이 씨가 된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무심코 던진 말이 타자의 가슴에 못을 박지 않았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입을 다스린 결과에 존경도 사랑도 미움도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