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천덕꾸러기뎐 / 최재남
신新 천덕꾸러기뎐 / 최 재 남
그녀는 자랄 때 천덕꾸러기였다.
단지 '쓸데없는 기집애'라는 이유였다.
열을 낳아 반만 건진 어머니의 운명도 기구했지만 태어나자마자 여자라는 이유로 홀대받은 딸년들도 억울하기는 매일반이었다.
그게 어찌 태어난자의 잘못이겠는가. 그녀는 세상에 나와 "으앙"하고 운 죄밖에는 없다. 아랫도리에 무엇인가를 달고 나와야 대접받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걸 알았더라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미루고라도 찾아봤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역활을 할 때마다 두고두고 핀잔의 대상이 될 줄 몰랐다. 세상에 나올 때 그렇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못한 자의 설움이었다.
어머니 기대에 부응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는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다. 니까짓 것들, 쓸데도 없는 것들, 무언가 일이 틀어져 마음에 안 들면 마치 뭔가를 크게 잘못한 것처럼 그녀를 몰아치던 어머니,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숫하게 내던져졌던 딸년이라는 호칭, 그럴 때마다 단지 무언가를 달고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번 주눅이들곤 했다.
그녀는 다섯 살까지 남장을 하고 자랐다.
사내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갈망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 으레 "고놈, 참 예쁘게 생겼다. 어디 고추좀 보자" 어른들의 관삼은 오로지 그녀 사타구니에 있었다. 어른들이 그녀에게 바라는 것, 그녀가 세상에 당당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시장가면 고추 사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다.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떼를 써서라도 사고 싶었다.
어머니에겐 남자에 대한 특별한 우선권이 있다.
앉을 때도 남녀 차별하여 앉히고, 먹는 것도 남자 우선으로 먹이고,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철칙이다. 오죽하면 세뱃돈도 남녀 구분지어 주실까.
흔하게 말하는 팔자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묘한 것은 결혼을 했는데도 그 굴레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달라지기는 커녕 그녀를 더 옥죈 것은 '차별'이란 단어였다. 그녀가 결혼을 했을 때, 일흔 넷이었던 시할머니는 어머니 수준보다 한 수 위엿다. 아흔 두 살까지 머리를 쪽을 틀어 머리를 빗고 풀을 매겨 모시적삼을 즐겨 입던 시할머니는 분명 어머니보다 한 등급 위였다. 그녀가 임신을 하자마자 한약을 보냈는데, 필히 새벽 5시에 일어나 동쪽을 바라보며 마셔야 아들을 낳는다고 했다. 만약 아들을 못낳으면 "니가 내 마음을 안 들은 걸로 알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놈의 아들 타령은 지긋지긋했다. 유교사상에 젖어있던 시할머니는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수저질 하는 게 아니라며 함께 식탁에 앉지 못하게 했다. 큰 애가 어렸을 적, 방바닥에 널려 있던 아이 옷을 넘다가 꾸중을 들었는데 "니가 아무리 애미라도 남자 옷을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열화와 같은 응원 덕에 그녀는 순탄하게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들 둘 낳은 그녀를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동정 한다. 딸이 있어야 하는데 아들만 둘이라 딱하단다. 이건 또 뭔소린가. 쓸데없는 딸년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으스대고 싶은데,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낳았으니 자랑할 만한 일인데, 칭찬은 고사하고 그녀를 보고 안 됐다고들 난리다. 딸이 없어 외로울 거라느니, 노후가 쓸쓸할 거라니, 도데체 딸년이라고 홀대할 땐 언제고 번듯한 아들을 둘을 낳아 기세등등하게 살아 보려는 그녀에게 딸이 없어 외로울 거라니…. 참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어머니가 일구월심으로 바라던 아들을 둘이나 낳았으면 당연히 박수 세례를 받아 마땅하거늘 이제와 딱하다고? 세상이 우수워졌다. 아들네 집은 비자내서 가야하고, 김치 담아 며느리 몰래 경비실에 놓고 와야 하고, 시어머니 찾아 오지 못하게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짓는단다. 떠도는 얘기들이 그녀의 기를 팍팍 죽인다. 어머니가 오매불망 바라던 아들을, 둘이나 낳았건만 이제 그것 때문에 그녀가 천덕꾸러기, 될 것이란다. '쓸데 없는 기집애'라고 능멸하던 세상이 변했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이고, 딸 하나에 아들 하나면 은메달이고, 딸 둘이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란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이 그녀를 희롱하는 것 같다. 뭐 하나 달고 나오지 않았다는 죄로,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이제 아들 둘 낳아 그 덕분에 기 펴고 살까 기대가 창창한데, 떠도는 얘기들이 말짱 구박덩어리로다. 언감생신 콧대 높여 으스대려 했더니만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녀가 딱 그짝이다.
오호 애달프다. 다시 천덕꾸러기 신세라니…. 야심한 생각은 솟구쳤다 사라지고 뒷심 잃은 마음만 허망하도다. 에라, 이왕 이리된 거 허세라도 부리며 큰 소리 땅땅 치고 말지어다. 까짓, 늠름한 척, 도도한 척, 여유로운 척, 폼생폼사로 살어리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