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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꽃 ㅡ 변해명

장대명화 2011. 1. 5. 23:53
 진달래 꽃 ㅡ 변해명

산에 오른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진달래가 능선마다 넘실거리며 눈물처럼 쏟아져 내린다. 소쩍새 울음 빛이다. 낮은 산자락 돌무더기 위에도 진달래가 덤불처럼 어우러져 내 키를 넘고, 나를 꽃 속에 가둔다. 꽃을 한 움큼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본다. 그리움처럼 꽃향기가 피어난다. 꽃 속에서 아기들이 꽃처럼 웃고 있다. 꽃 문둥이처럼 돌아가신 외숙모가 꽃 속에서 고개를 든다.  진달래꽃을 꺾어 들고 내려와 마루 끝에 앉아 어이어이 통곡하던 외숙모. 그러다가 언제 울었냐 싶게 말을 하던 모습이다.
  "밤사이 여우가 구멍을 팠더라고. 우리 아기 팔이라도 물어가지 않았나. 손을 넣는데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더라고."  그러다가 또 어이어이 울음을 토하던 외숙모다.
  첫아들을 홍역으로 잃고 매일 아기잠(애총 : 兒塚)에 가서 아기를 만나고 오던 외숙모. 그는 그 뒤로 돌을 가져다가 자꾸 쌓으며 짐승을 막았다. 그 둘레로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6.25 전쟁이 끝날 무렵 시골의 어린아이들은 참 많이 어미 곁을 떠났다. 그들은 논머리, 밭머리, 아니면 야산에 봉분 없이 묻히고 돌무더기로 표시가 되었다. 거적에 두르르 말아 지게에 지고, 그저 애비 혼자 눈물 훌쩍이며 허부적 허부적 파묻은 애총이라 그래서인지 산짐승들이 자주 헤집어놓았다. 그 자리를 진달래가 덮었다.
   

   

  허망하게 지고 말 꽃들인데 왜 이리 눈이 부신지. 진정 서러워 발길을 멈춘다. 오늘따라 아기들의 영혼처럼 꽃이 내게 다가온다. '애오개 탈춤놀이'라도 질펀하게 벌어질 것 같다.  옛날에는 광희문(사구문 : 死口門) 밖으로 4대문 안 사람들이 시신을 버렸는데, 아현동 산 애오개는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버려서 애오개란 이름이 붙은 곳이다.  마음에 한 번씩 마마(천연두), 염병(장티푸스), 호열자(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돌면, 병이 들어 죽었거나 아직은 죽지 않았어도 의식이 없거나 살아날 가망이 없는 아이들을 항아리에 넣고 애오개에 갖다 묻은 후 항아리 위에 무거운 돌을 쌓아 아이들의 넋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돌로 항아리를 누르고 돌을 쌓지 않으면 죽은 아이의 넋이 마을로 다시 돌아와 다른 아이에게 해코지를 해서이다. 그 아이들의 영혼이 얼마나 어여쁘면 애오개 탈춤놀이가 생겨났겠는가.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진달래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흥청대며 출렁거리는 버들피리 가락처럼 내 영혼의 대를 잡고 흔들면서 날 데려간다.  진달래가 나를 덮어도 세상에 혼자인 듯 그림자도 없이 오르는 산길. 오르는 길이 너무도 외롭다.  나도 진달래 속에 아기로 서고, 내 항아리 위에 돌을 얹는 어머니가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