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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 김 윤 제

장대명화 2020. 2. 6. 02:06

                                                        가지치기 / 김 윤 제

 

  구정이 지나기가 무섭게 늙은 농부는 과수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아내를 들볶았다. 과수원 밭둑에 앉아 있으면 성큼 봄이 오는 것 같다. 종달새가 울고 새참을 내오는 젊은 아내가 보이고, 그 뒤를 졸랑대며 따라오는 어린 딸의 모습이 보인다. 당장에라도 옷 걷어 부치고 밭으로 달려가 일하고 싶지만 늙고 병든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젊을 땐 아프고 싶어도 아프지 않던 육신이었다. 아니 아플 새 없이 일해도 시간은 늘 부족했다. 해도해도 끝이 없었던 농사일.

 

  늙은 농부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구정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바람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복숭아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전지를 했다. 싹둑싹둑, 붉게 물오른 새 순이 발밑에 수북이 쌓였다. 농부는 벌써부터 탐스런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릴 것을 생각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발밑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따라 다니던 어린 딸은 죽은 나무는 자르지 않고 살아 있는 여린 가지만 잘라내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부지? 저 나무는 죽었는디 왜 자르지 않아?" 어린 딸은 꽃눈 보는 눈이 없었기에 묵은 나무가 죽은 줄 알았다.

 

  "응 그것은 죽은 게 아녀. 겨울동안 쉬는겨 이렇게 가지치기를 해주면 햇볕과 두엄을 먹고 꽃을 피우는 거여"

 

  어린 딸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말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농부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복숭아나무는 농부에게 있어 자신의 일부였다.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두엄주고, 꽃을 선별하고, 열매를 솎아내려면 마음부터 아팠다. 모두 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가 되었는데 더 나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일부분을 따 버리는 일은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열매 솎는 일은 며칠씩 계속되었다. 하루 종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열매를 솎아내다 보면 고개는 앞으로 젖혀지지 않았고, 온 몸은 복숭아깔로 인해 벌겋게 부어올랐다. 밤새 부어오른 피부를 긁느라 잠을 설쳐도 새벽이 되면 또 다시 밭으로 나갔다. 솎아내는 작업이 끝나면 열매에 봉지 씌우고, 오갈병 든 잎 떼어내고, 소독하고, 풀 깎아내고수확기가 되면 4~5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빠졌지만 농부는 한 번도 그 일이 힘들다고 여기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처자식을 건사해주는 경제의 창고였고, 자신의 삶의 놀이 마당이라고 여겼으므로.

 

  그 때 어린 꼬마는 사람이 늙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봄이 오면 복숭아꽃이 피고, 아버지는 당연히 밭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 그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인 줄 알았고 영원할 줄 알았다.

 

  이제 늙은 농부는 과수원에 다녀 온 날이면 꿈을 꾼다고 하셨다. 꿈속에서 거름내고 전지를 한다고 하셨다. 허공에 대고 헛손질하는 농부를 보며 나는 세월이 흘렀음을 인정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수레에 복숭아 상자를 가득 싣고 읍내에 다녀오셨던 힘은 간데없고 좁은 병실 몇 바퀴 돌고 숨차하는 모습을 보며 늙음도 확인한다.

 

  오늘도 그는 허공에 대고 전지를 하다 잠에서 깨었다. 가늘고 힘없는 손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복숭아 상자를 번쩍 번쩍 들어 올렸던 팔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의 팔뚝에 꽂힌 링거주사를 빼고 물오른 복숭아나무 새순을 꽂아드리고 싶다. 그러면 그의 몸에서 연분홍 꽃이 필까.

 

  억지를 쓰는 중년의 딸에게

  "괜찮어. 사람은 누구나 다 한 번은 피었다가 지는겨,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다 지는게 인생인겨."

 

  누구나 한 번은 피었다가 지는 삶,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슨 꽃이었을까.

 

  일 년 내 지은 복숭아는 하룻밤 몰아친 태풍으로 수북이 껄어진 것을 바라보며 피운 한숨의 꽃, 과수원 팔아 시작한 운수업이 오일파동으로 인해 남의 손에 넘기워질 때 피운 절망의 꽃. 이저저도 안되는 세상 주막으로 노름판으로 끌려 다니며 피운 자책의 꽃, 당신을 꼭 닮았다고 유난히 사랑했던 아들을 잃고 피운 통곡의 꽃. 그 힘겨운 꽃을 피울 때마다 그의 정맥에 새로운 힘을 공급해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구정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물오르는 복숭아나무 새순이 아니었을까. 추위도 가시지 않은 벌판에서 전지를 하며 어쩌면 자신의 삶을 전지했을 아버지,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 인생을 잘라내고, 남들과 비교하며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잘라냈으리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자신이 늙었음을 인정하지 않아 힘들어 하셨는데 요즘엔 모든 것을 인정하며 마음에 평화를 찾으셨다. 자녀들에게도 인생은 짧고 부질없는 것이니 욕심 부리지 말고 웃으며 살라는 당부를 하신다. 어느 정도 새순을 잘라내야 많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솎아내야 더 실한 과일이 되는 것처럼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얼굴빛은 밝아지고 마음은 아이처럼 순수해지신다.

 

  방금 전 잠드신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어린 시절 일하는 아버지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것처럼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어 마음이 아픈데, 아버지는 아무것도 바랄 것 없다는 듯 잘 주무신다.

 

 지금은 무슨 꿈을 꾸고 계실까. 세상에 대한 그리움, 아내의 애틋한 보살핌, 주막집아주머니와의 풋사랑을 잘라내시는 걸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전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싹둑싹둑.

 

  늙은 농부는 지금 연분홍빛 몸살을 앓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