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꽃봉투

장대명화 2020. 1. 19. 09:02

                                               꽃봉투 / 장 란 순

 

 

 매주 화요일이 되면 남편은 이른 아침 부터 서두르기 시작한다. 마치 정인(情人)이라도 만나러 가는 양 시쳇말로 때 빼고 광내고 향수까지 뿌린다. 살짝 놀려주려는 마음으로 무엇이 그리 신이 나 치장을 해요?”라고 물으면 남편은 그냥 허허 웃으며 아무 말도 없이 서둘러 외출한다.

  교직생활 40여년을 마치고 퇴직한 남편은 그동안 못했던 해외여행, 운동, 평생교육원, 못 만났던 사람들 만나기 등 시간이 없어 못해 보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느라 신바람이 났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빠졌다. 저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어떻게 참고 교직생활에만 전념했을까를 생각하면 고맙고 감사하다.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생활했던 사람이기에 남편의 바깥나들이는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자 취미생활을 할 만큼 한 것인지 우두커니 앉아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앞으로 남은 생을 무언가 뜻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 남편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분명 남편도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개인을 위한 활동에 큰 위로를 받지 못하는 듯 했다. 자칫하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빠져 외출도 미루고 고민만 할 경우 건강을 해칠 우려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지인이 봉사활동을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지인은 남편이 전직 교사로 정년퇴직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청주여자교도소 교정활동인 수용자 검정고시 반 수학과목 수업을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처음 남편은 전공이 수학이긴 하여도 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고민하는 듯싶었다. 현직에 있을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는 갭(gap)이 있을 거라는 부담감이 앞서지 않았나 싶다. 사람이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령 의도적인 범죄 행위라 하여도 개과천선 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남편은 어두운 면보다 미래의 밝은 면을 보기로 하고, 수학 수업을 수락했다고 한다.

 

 첫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잔뜩 긴장하며 나서는 남편을 보니 내심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던 사람이 긴장을 한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장소와 대상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교도소 정문으로 들어서니 삼엄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강의실에 입실 하였다는데, 직업의식 탓일까? 수용자단체복을 입은 재소자들을 보는 순간, 여자고등학교 교실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더란다. 하여 앞으로 이 사람들은 재소자가 아닌 내 제자들이라 생각하고 편견 없는 수업을 하리라는 다짐을 하였다 한다. 간혹 짙은 화장을 하고 옆 사람과 소곤거리며 딴전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학교를 다니지 못할 딱한 사정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한을 풀고자 초, , , 국가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수용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기초과정부터 시작한 수업이지만 향학열만은 일반 학생들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수업이 올해로 6년째다. 그들을 대하면서 왜 이곳에 왔을까? 의문이 생겼어도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연민마저 느껴진단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의 짧은 수업이지만 쉬는 시간도 아까워 할 만큼 질문을 하며 성실하게 공부하는 수용자들의 태도를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였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며 감사인사를 하고 퇴소하는 사람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오늘따라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른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냐는 듯 바라보는 내게 불쑥 감사장과 고운 꽃봉투 한 통을 건넨다. 이게 뭘까. 공연히 설레는 가슴으로 꽃봉투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스승의 날이라며 재소자들이 써준 편지가 한통 들어 있었다. ! 오늘이 스승의 날이었구나. 그동안 남편은 교직에서 퇴직한 이후 스승의 날을 잊고 살았다. 찾아오는 학생들도 없었고 편지를 보내는 학생들도 보기 힘든 것이 요즈음 세태인데 재소자들에게서 이런 감사장과 편지를 받게 될 줄이야…… 남편의 감사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감 사 장

 

  본 감사장은 오랜 시간 배움을 갈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늘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수학 선생님께 드립니다.

  각자의 실수와 시련의 굴곡으로 인해 사회와 잠시 단절된 이곳에 있는 수용자를 위해 그 어떤 색안경도 없이 지식을 습득 하고 싶어 하는 학생으로 바라보아 주시는 배려와 시선에 감사드리며 수학에 자신감이 없는 학생에게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지도하여 주셔서 수학문제 하나하나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을 때마다 기쁨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선생님의 도움의 손길은 배움 열정 꿈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515일 스승의 날에 올립니다.

 

 

 남편이 수업을 하러 강의실로 들어서자 재소자들 모두 기립 박수를 친 뒤 스승의 날노래를 불러 주었고, 반대표가 읽은 감사장을 전달 받을 때의 기쁨은 이루 표현 할 길이 없었다고 자랑이다.

  예쁜 색지에 조목조목 정성껏 쓴 감사장과 글 쓴 사람 자신의 또 한 통의 편지까지, 읽어 나가는 한 줄 한 줄이 나를 감동시켰다. 아니 할 말을 잊었다.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수려한 문장뿐만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가 예사의 글 솜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리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어찌하여 그 곳에 들어갔을까?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표현을 할 길이 없었다. 남편이 수업을 다니며 재소자들에게 연민마저 느껴진다고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나이 들어가며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구나 음지(陰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보람된 일이 아닐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남편이 어느 날 나 법무부 장관상 탔다네!”라며 건네주던 표창장을 받은 나는 현직에 있을 때 받았던 그 어느 상보다도 으뜸상이라는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재주가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재능기부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별 게 아닌 것이라도 타인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삶이야말로 보람이고 활력이 될 수 있기에 남편이 시작한 제2의 교직생활이 꽃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예쁜 꽃봉투에 담기어 행복을 몰고 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