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 장정일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 장정일
문학상시상식이라는 건 자주 있는 행사이다. 격식에 따라 소박하게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행사도 있다. 얼마 전에 참석했던 제3회 두만강문학상(연변소설가학회 주최)시상식이 바로 그런 이외로운 행사였다.
그 감흥은 우선 올해 수상작들이 모두 인구이동의 스토리-이민이나 출국노무자들의 애환-를 다루고 있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었다. 해외상수상작(미국 방경숙 작)은 조선전쟁이 남긴 상흔-미국에 이주를 가서도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작중인물의 고질적인 허전함과 슬픔을 다룬 소설이고 국내상수상작(중국 김금희 작)은 국경을 넘나드는 인구이동현상을 배경으로 풀어낸 귀향노무자의 창업담이었는데 두 소설 모두 노마드(유목민)적인 이야기여서 눈길을 끌었다.
이점만으로도 꽤 흥미로웠는데 더 큰 흥미로움은 뒤에 있었다. 시상식 제2부로 연주회가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사전약속이라도 한 듯이 수상소설 스토리와 어울리는 바이올린명곡 〈치고이너바이젠〉(이전의 곡명은 〈찌고이네르바이젠〉이고, 〈방랑자의 노래〉 또는 〈집시의 노래〉라고도 함)도 연주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보통연주자가 아니라 한국의 쟁쟁한 연주가 송원진(바이올린), 송세진(피아노)자매의 연주여서 효과만점이었다. 그녀들은 작년 제2회 두만강문학상 해외상수상자 공령희의 딸이자 한국인 최초의 모스크바국립차이꼽스끼음악원 출신이었다.
일망무제한 초원, 고풍의 풍막수레, 고달픈 떠돌이삶을 연상시키는 곡상. 목메이는 애수가 넘쳐흐르다가도 집시특유의 광적인 환희로 돌변하는 그 신들린 듯한 연주에 시상식장인 연변대학예술학원음악홀은 열렬한 박수갈채로 화답하였다. 문인, 예술인, 외국인, 내국인이 함께 한 뜻 깊은 자리에서 여러 옥타브를 순식간에 오르내리는 명연주가 울려 퍼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주도중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음악회 상식이 깨지면서 산발적인, 그러나 즉흥적인 박수소리도 들렸다.
이때 문학은 단지 문학만이 아니었다. 이때 음악도 단지 음악만이 아니었다. 문학과 음악의 절묘한 하모니는 흥분을 고조시키고 상상의 나래를 부여하면서 격식에 구애받기 쉬운 시상식을 예술적 감동의 장으로 만들어갔다.
〈찌고이네르바이젠〉은 나의 애청곡이여서 더구나 반가웠다. 전세계 모든 인류가 다 아는 곡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지만 나는 “문화대혁명” 뒤에야 접했고 그것도 녹음테이프로였다. 우리의 문학작품에서는 김학철의 자전적인 소설 《격정시대》에서 처음 띄워보았다.
“선장이를 황홀한 나머지에 콱 죽어버리고 싶도록 만든 것은 한선희의 바이올린독주-〈찌고이네르바이젠〉이였다. 그때까지 선장이는 그런 곡이 이 지구상에 있는 줄도 몰랐었고 또 바이올린이라는 하찮은 깽깽이가 그렇게까지 사람을 매혹하게 하는 줄도 몰랐었다… 선장이는 열네 살을 먹도록 전연 알지 못하고 살아온 또 하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윽하면서도 현란한 고전음악의 세계에 눈을 뜬것이다.”
감수성이 강한 소년시절을 쓴 이 에피소드를 보면 〈찌고이네르바이젠〉이, 그윽하면서도 현란한 고전음악의 세계가 선생의 정신세계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매혹적인 감동을 주는 명곡의 비밀은 무엇일까?
슈베르트는 말했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야말로 세계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된다. 슬픔은 이해를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슬픔과 즐거움은 모순되면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정감세계의 두 측면이다. 〈찌고이네르바이젠〉도 슬픔으로 시작해 환희의 춤곡으로 끝난다. 기교도 기교지만 바로 인간의 정감세계의 두 측면을 조화롭고 깊이 있게 표현했기에 〈찌고이네르바이젠〉은 시상식장의 청중은 물론 세계인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리라.
정착과 이동이 인간생활의 두 양상이기는 하나 실은 정착민에게도 유목민의 기질이 내재해있고 유목민에게도 정착지향의 심리가 있다. 정착이 정체로 변질해 답답하고 슬프던 세월 여행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이 자유로워진 오늘에는 이동의 고단함에 종지부를 찍고 “귀향창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다. 정착과 이동, 그 사이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슬픔의 한숨이 새어나오고 환희의 미소가 피어나는 한 소설은 마르지 않을 것이고 협주곡의 선율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음악의 감동을 선물한 송원진, 송세진 자매는 《불멸의 사랑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 행간을 보면 그녀들의 유목민적 기질이 만만찮아 보인다. 대학에 재직하면서도 그녀들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유목민적인 연주생활을 즐긴다. 클래식드라마, 목요음악회, 김연아 아이스쇼, KBS 〈클래식오디세이〉, 로씨야 대통령환영 청와대행사에 출연했던 그녀들은 대형전문연주홀에서는 물론 백화점문화홀 같은데서도 흔쾌히 클래식음악을 전파하고 있다. 2008년부터 해마다 부모의 고향 전주의 한옥마을에서 클래식정기연주회를 갖는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클래식적”인 한옥에서 서양의 가장 오래된 음악인 클래식을 연주하는 게 그녀들로선 신기하고 특이하고 재미있단다.
“음악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누가 우리 앞에 앉아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와 어디서든 항상 최고의 감정으로 같이 호흡하고 같이 웃고 같이 즐기고 싶다.”
정착민인 그들 자매는 〈찌고이네르바이젠〉-집시의 노래를 사랑한다. 특이한 유목민스타일의 그녀들이 기특하고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