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작법 도움 글

수필이라는 이름의 밥상 / 유 병 근

장대명화 2019. 6. 10. 19:23

                                수필이라는 이름의 밥상 / 유 병 근


   1.
   노변한담爐邊閑談이라고 자리매김되는 수필은 담담하고 음전한 선비문학쯤으로 인식되기 쉽다. 구성에 치열성이 배제되고 딱딱한 언술은 비켜가고자 한다. 양반 사대부의 디엔에이가 수필의 골수에 박혀 있어 거기서 벗어나면 선비문학인 수필에서 따돌림을 받기 쉽다.
   하기에 수필가는 수필의 됨됨이에 따뜻하고 맛깔스런 양념을 치려한다. 언어에 항거하거나 언어를 비뚤어 새로운 언어로 변형할 엄두는 내지 않는다. 전통의 맥을 잇는 가장 안전하고 보람 있는 수필은 노변한담의 격에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에 굳이 항거할 깃발을 세우지 않는 수필은 누가 보나 안전하고 친숙하고 편안한 장르이다.
   수필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것은 문학으로서의 수필을 위한 기본개념이다. 그 개념을 터득하고 익힌 다음에는 수필가 나름의 새로운 개념정립도 필요하리라 본다. 그것은 문학에서의 개성 구축을 위한 길이 된다. 개성이 없는 문학은 개성이 결핍된 인간상에 견줄 수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그 나름의 확고한 인생관을 갖는다. 그러지 못할 때 인생이란 그저 그러한 세월 까먹기에 지나지 않는 보편성으로 안주하게 된다.
   하물며 문학담론을 위한 수필의 경우 그 나물에 그 밥일 수 없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은 천편일률이나 다름없는 싱겁고 지루한 노릇이다. 독자가 수필을 외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천편일률에 있다.
   사람이 사는 길이란 대충 대동소이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한 권의 수필집이거나 한 권의 수필잡지인 경우도 이에 견줄 수 있다면 무례한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어도 그게 그거였다고 한다면 그 수필집은 알맹이가 텅 빈 밋밋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무슨 새로운 언표를 남기고자 하는지, 왜 썼는지 독자의 독후감에 기복이 없는 수필집은 다른 수필집에 손을 대지 않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는 출판문화의 홍수와 함께한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그렇다. 책이 흔한 세상에서는 읽히기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하다. 그 결과 흥미 위주의 책이 독서계를 이끌어 나간다. 머리 아픈 세상에 굳이 머리 아픈 책을 읽을 일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종류는 그런 점에서 독서계의 인기와 흥미를 차지한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상은 머리에 애써 입력하지 않아도 기계가 알아서 척척 해결해 준다. 간편하게 소지하고 다니는 기계에 입력하고 필요한 경우 그걸 끄집어내면 된다. 하기에 머리를 쓰면서 수필을 읽는 것을 따분하게 생각할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흥미와 재미가 곁들여야 좋은 수필, 읽을거리로서의 수필로 대접 받는다.
   그런데 수필은 흥미와 재미만으로 소통되는 문학이 아니다. 세계를 참신하게 보고 해석하려는 의도에 더 깊은 뜻을 둔다. 세계의 재발견에 흥미를 갖는다. 그것이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하고 문화향수文化享受의 의미를 보다 아름답게 한다.
   수필은 언어를 골재로 하는 소재건축의 문학임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언어를 깎고 다듬어 보다 건실한 수필구도를 짜야 한다. 원고지 열몇 장이라는 기본개념에 얽매어 그 매수를 충족시키고자 굳이 이야기를 늘어트린다. 수필은 매수의 경우에도 다양성이란 것을 생각하고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고지식한 수필은 밥공기의 모양새와 크기는 꼭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밥은 때로 접시에 담을 수 있고 바가지에도 담을 수 있다. 잎사귀에 담는 연밥도 있지 않는가.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서 밥그릇이 달라지듯 수필도 소재와 분위기에 따라서 길게도 짧게도 구성할 수 있어야 모양새가 나고 수필의 다양성에도 힘이 된다.

 2

 매실과 설탕을 알맞은 비율로 담글 때 알맞은 맛이 우러난다. 그 맛은 가, , , 라와 같은 이러저러한 성분을 갖춘 음료가 된다. 두뇌에 잠재하는 생각 또한 알맞은 문장으로 간을 친 다음 비로소 수필이라는 알찬 구조로 태어난다. A(매실)+B(설탕)C라는 새로운 결과물을 보게된다.
   수필은 흔히 창작문학이 아니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시와 소설은 창작문학으로서의 대접을 받는데 수필은 유독 그런 이름에서 제외된다. 창작이란 A+B가 새로운 무엇으로 변환되는 결과물이다. 그것이 가령 C로 나타날 경우 C속에는 A+B라는 소재가 새로운 인자로 몸바꿈을 한 디엔에이가 내포된다.
   상상력은 C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며 그 힘이다. 종일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바람의 손길에 따라 흔들리는 것만은 아니다. 논어를 소리내어 읽는 노인처럼 상체를 좌우로 흔드는 나뭇가지에는 바람을 읽고 생각하는 슬기가 있다. 제 스스로 움직일 줄 모르는 나뭇가지를 바람이 흔들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바람과의 끈질긴 인연이다. 무거운 구름을 허공에서 허공으로 밀어 올리는 그 바람도 나뭇가지와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물론 나뭇가지와 바람에서 보고 느낀 체험과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이런 점 체험과 상상력은 허구가 아닌 시적 진실이다. 수필에 허구가 끼어들 수 없는 이유는 체험의 문학이라는 진실/진솔함 때문이기도 하다. 수필은 허구라는 씨알머리를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은 행이든 불행이든 어쩔 수 없는 수필의 생리이다. 만약 허구를 수필의 체질에 강제주입하거나 이를 이용/허용한다면 체험의 문학이 아닌 공상의 문학 쪽으로 다루어야 한다.
   수필은 체험/상상력에 따른 새로운 모습으로 지향하려는 끈질긴 노력을 갖는다. 그 새로운 상상력으로 인하여 수필은 매번 모습을 달리하는 참신한 체험문학의 반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독자에게서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매번 그게 그것인 내용에 질리기 때문이다. 다 같은 소재라도 그 소재를 해석하는 상상력에 따라 참신한 내용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그러나 수필가 스스로 수필은 양반/선비문학으로 음전한 전통내림에 흡족하려 한다.
   하지만 수필가의 참된 수필사랑은 세계를 참신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낯설게 해석하는 일에 전력투구하는 정신에 있다. 그 치열한 노력이 수필의 다양성과 문학성을 보다 높이는 길이 된다. 어제의 기법은 오늘 또 다른 기법으로 승화/향상 시키려는 욕구를 갖는다. 왜 그러는가. 남과는 다른 소통의 길을 모색하여 그 나름의 개성 있는 예술지향을 시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지가 있을 때보다 낯설고 참신한 수필에의 독보적인 길을 차지할 수 있다. 어제 불던 봄바람은 오늘은 당연히 다른 봄바람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봄바람 같은 시원한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찾으려는 갈망과 힘이 있다. 아름다움은 참[]과 함께 선이기 때문이다. 진솔한 문학이라는 말의 바닥에는 참과 선이 공존하는 기꺼움으로 가득 찬다. ‘생각나는 대로라는 수필의 기본개념은 어수룩하면서 깊은 진솔성을 바닥에 깔고 있다. 이 언술의 바닥에는 골똘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의 바닥에 깊이 잠긴 알맹이를 탐색하라는 숨은 뜻이 중심을 이룬다.
   생각에도 당연히 울림이 있다. 얕은 울림은 그 바닥을 쉽게 드러낸다. 하지만 깊은 울림은 웅숭깊은 흐름이 되어 대상을 은근하게 비춘다. 수필이 세상에 존재하려면 깊은 울림이어야 비로소 수필의 여운을 만끽할 수 있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 언질 속에 내포된 참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수필에서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시장바닥에 깔린 액면 그대로의 이야기가 수필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하늘은 높고 푸르다를 그대로 반복하는 상식적인 글이 되고 말 것이다. 의 의미요소인 혈은 아득하고 가물가물함이다. 그 빛깔은 현황玄黃으로 통하는 길을 보여준다. 하므로 수필가는 현황인 하늘의 뜻을 새롭게 읽고 보아야했다. 그것이 곧 운필運筆하는 마음이 지향하는 길임은 새삼 말할 바 없다.
   수필을 문학이라는 밥상에 올리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결과물이어야 할 것이다. 씨알이 먹히지 않는 상투적인 평범한 이야기, 혼자만 아는 척하는 구절 인용으로 현학적인 수필의 밥상을 차릴 수는 없다. 수필은 세계를 새롭게 보고 깨닫는 참신한 문학인데 이미 있는 엇비슷한 내용을 중언부언하는 일은 상투적인 복제문학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신선하고 낯선 감성, 심오하고 남다른 지성으로 감동의 결을 짜보라고 수필이 넌지시 타일러 준다.